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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의 쌀, ‘철’로 꽃 피우는 글로벌 No.1 기술강국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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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포스코에 큰 경사가 생겼다. 광양제철소에서 2008년 이후 두 번째로 '대한민국 명장'을 배출한 것이다.
32년간 광양제철소에서 일하며 숱한 성과를 쌓아온 이선동 명장, 그의 어깨에 묵직하게 얹힌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만나보자.
 

 

우연 같은 운명,
포스코와의 만남

정년퇴직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빛나는 청년의 눈빛과 칼칼한 에너지의 압도적인 느낌이 마주 앉은 명장의 나이를 잊게 만드니 말이다.
5전 6기의 도전 끝에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막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국가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니 당연하다는 그의 말에 방문객들의 나태함이 민망해진다.

이선동 파트장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입사한 시기는 1989년이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던 그 옛날, 그를 제철소에 이끈 것은 아버지였다. 군 제대를 목전에 둔 그의 이력서를 포스코 군 특별 전형채용 모집공고에 불쑥 내버린 게 그 출발점이었던 것.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드는 것, 흔히 말하는 ‘공작’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 대신에 서울북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는데, 제대 직전에 아버지께서 면회를 오셔서 ‘포스코’에 면접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 포항제철은 정말 큰 기업이었고 제가 합격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죠.”
 


광양제철소에 입사해서 그가 맡은 일은 ‘연주공장 연주기 정비업무’였다. 숙련된 기술을 가진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그는 용강을 응고시켜 슬라브 제품으로 만들어 생산하는 공장에서 사용되는 연주기의 성능을 복원해 연주공장에 공급해주는 까다로운 업무를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배우고 익혔다. 그런 그를 특별히 예뻐했던 곽판규 선배(현 인도네시아 PK.TP 제철소 근무)는 지금도 그가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수이다.
 

 

현장이 곧 학교였고
스승이었다

이선동 명장이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95년도 무렵이었다. 막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절, 그는 집에 돌아가면 공정제안, 공정개선, 업무 중 떠오른 아이디어, 3D 설계도 등을 밤새 컴퓨터로 작업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일반 제안은 1,600여 건이 넘었고 그중 우수제안은 100여 건, 특허 등록은 37건, 출원은 46건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제안왕으로 다섯 차례 선정되고,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모범사원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연주기 정비 분야의 최고 숙련자가 되기 위해 근무하는 짬짬이 공부해 제강·용접기능장, 기계정비산업기사, 산업안전산업기사 등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 자격증을 획득한 것 또한 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이 명장이 스스로 말하는, 설비 쪽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연주기 설비관리시스템이다. 철강 완제품의 각종 중간 소재를 만드는 기계장치인 연주기 설비는 운전·정비·수리 업무를 유기적으로 연동해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일원화된 관리체계가 없어 같은 정보가 중복 집계되거나 누락이 나오는 등 업무처리 효율성이 크게 떨어져 모두를 힘들게 했었다고.

“그래서 포항산업기술연구원에 연구과제를 요청했습니다. 우리측 제안으로 연구원들이 시스템을 개발했지요. 2007년도에 개발을 시작해 지속해서 업데이트했고 2019년도에 업그레이드까지 끝냈어요. 이 설비관리시스템은 조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력을 장비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부여해 생산성 향상은 물론 정비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연주기 정비기술의 신세계는 이렇게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기술전수로 이어갈
기술 강국의 꿈

직장인으로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이선동 명장은 포스코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성취가 포스코의 지원과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연구과제와 창의활동 등은 제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했습니다. 또 QSS, TL(Technician Level) 인증 제도 등을 통해 늘 새로운 자극을 받았기에 개인 역량을 계발할 수 있었지요. 입사부터 지금까지 오직 연주기 파트에서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포스코 입사가 결정된 뒤 시내 당구장에 갈 때도 등 뒤에 ‘포항제철’이라고 쓰인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닐 정도로 자부심이 남달랐던 그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명장으로 선정됐을 당시에는 하늘을 오를 듯 기뻤지만 지금 그의 어깨에는 더 큰 사명감이 묵직하게 얹혀 있다. 바로 기술 전수를 통한 후진 양성에 대한 꿈이 그것이다.
 


“30년 전 제가 입사를 했을 때만 해도 기술은 곧 몸값이었어요. 노하우를 자기만 알고 있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저희 파트만 해도 50대가 절반, 나머지 절반은 20, 30대예요. 중간단계가 없는 거죠. 저 같은 사람이 정년을 마치면 기술공백이 생기는 겁니다. 명장으로서 아낌없는 기술 전수로 우리나라 제철산업과 중소기업 발전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선동 명장은 이런 영예를 얻기까지 물심양면 도와준 아내 유미란 씨, 딸 다혜씨, 아들 준영 씨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전했다.
오직 성실과 열정, 근면함으로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밝은 미래를 앞당기는 이선동 명장. 그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로 밥을 지어 대한민국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세계에서 떨쳐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단단히 잡고서 계속해서 정진할 것이다.
 


 

업데이트 2021-05-1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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