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최연소 농업분야 기술사 3관왕 도전기
    농화학기술사, 종자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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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인생의 진로를 바꿔준 자격증,
정보처리기사와 식물보호기사

농업 전공이었지만 교직에 뜻이 있던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야학 교사를 하면서 교직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처음 자격시험을 쳤던 것이 생물 임용고시에 필요한 가산점을 위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취득한 자격증은 마치 금방이라도 시험에 합격하게 해 줄 것 같은 든든한 동아줄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1남 4녀 중 막내인 제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 되었고, 과학 강사와 수학 과외를 하며 학비·생활비를 버는 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능률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보증금 100만 원에 10만 원짜리 방에 살면서 보일러를 틀지 못한 겨울밤에는 물이 꽁꽁 얼어버리는 가혹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삼 년의 실패를 겪고서 다시 한번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농촌지도‘사’도 ‘스승 사(師)’자라며 교육 업무가 많다는 조교 선배님의 조언으로 진로를 다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기반을 잡지 못한 자식이 노부의 병환을 겪을 때 느꼈던 경제적인 무력감은 지금도 마음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때의 역경은 강한 의지를 갖게 해주었고, 진로를 변경하기로 한 지 6개월 만에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 자격증은 그해 가을, 해당 분야 공무원이 되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각성, 농화학기술사 도전
입사 후 교육부서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공을 살릴 수 있으리라는 꿈에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농업 전공이지만 농업인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기에 최고의 강의도 저에게는 무용지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을 거쳐 복직을 했습니다. 복직 후 발령받은 농업인 상담소는 농업인의 민원을 해결하고, 때로는 사랑방이 되는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현장에 계신 농업인을 만나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행복한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감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면서도 늘 저를 괴롭히는 마음의 짐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도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상담소 근무를 뒤로하고, 다시 한번 보직 이동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본소에서 작물에 대해 기술 지도를 해야 하는 보직이었습니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농업인들에게 정말로 도움 되는 지도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필요한 책들을 읽고, 무엇이든지 “저도 해보겠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라며 주변 사람들을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농화학기술사 시험을 한 달 앞두고 필기시험을 등록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답안을 제출하고 나오면서 느꼈던 보람은 제 마음의 가뭄에 단비를 내려주었고, ‘119회 농화학기술사 최종합격’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와 주었습니다.

하나씩 다가오는 성과,
종자기술사와 시설원예기술사

사실 농화학기술사 면접의 합격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난 뒤, 이 중에 딱 한 명이 떨어져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면접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여 기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면접은 비록 망쳤지만 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마음이 맑아졌고 바로 다음 회인 종자기술사를 준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마지막 4교시 시험지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뿌듯함과 안도감이 몰려와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뜻밖에도 ‘120회 종자기술사 합격’의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단기간에 두 개의 기술사를 취득하고 나니 농업 분야의 마지막 기술사 자격증인 시설원예기술사에 도전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담당하는 사업에 이 모든 내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121회 시설원예기술사에 덜컥 원서접수를 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난관은 다름 아닌 코로나였습니다.

4월 11일 예정이었던 필기시험이 5월 9일로 밀리면서 종자기술사 면접과 불과 10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공부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고,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주신 것인지 ‘120회 종자기술사 최종합격’의 소식과 함께 ‘121회 시설원예기술사’ 필기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7월 21일, 마지막으로 시설원예기술사 면접을 봤습니다. 치열했던 지난 일 년 동안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고, 그것이 업무를 추진하는 데 벌써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전으로 얻은 값진 자신감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끝까지 해결해 드리고자 노력합니다. 과거의 제가 지식이 짧아 크기가 균일하지 못한 ‘체’였다면 지금은 중요한 정보를 거르고 모을 수 있는 견고한 ‘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만의 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작은 시간도 쪼개 쓰면 유용할 수 있고, 해보지 않고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런 삶의 교훈은 앞으로 남은 제 인생을 헤쳐나가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항상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소홀하게 대했던 사랑하는 아이들, 나의 배우자와 가족, 격려해주신 직장동료분들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늘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업데이트 2021-04-2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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