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의 완성도, 현장의 기술이 좌우합니다
    대한민국 명장 ㈜진보건설 이준문 기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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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의 대형화, 새로운 시공법의 개발 등 건축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공사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인력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지난 40여 년간 전국의 건축현장을 오가며 내외부 골조 및 마감을 책임져 온 이준문 명장의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건축 분야를 넘나드는 현장의 전문가로 지난해 건축목공시공 분야의 명장으로 선정된 그를 만났다.
 

 

생계를 위해 현장으로
뛰어든 소년

국민학교에 채 입학하기도 전에 벌써 건설현장이 눈에 익숙했던 아이. 이준문 명장의 어린 시절은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전통한옥을 짓는 건설현장을 누볐던 추억으로 물들어있다. 보리밥 대신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줄기차게 아버지를 따라다닌 이유였다곤 하지만 현장을 오가며 호기심에 집어본 목공도구가 그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으니 돌이켜보면 모든 건 다 운명처럼 흘러온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을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중풍 환자가 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이어야 했어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보아온 현장이지만 막상 현업에 뛰어들어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하대의 시선이 쏟아지던 시절이기도 했고요. 말로 상처를 받은 것도 여러 번이었죠. 하지만 그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으니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된 건 분명합니다.”
 


당시만 해도 건설현장에서는 5년 정도는 허드렛일을 묵묵히 수행해야 비로소 하나둘씩 전문성 있는 일을 맡을 수 있었다. 그것이 관례였다. 이준문 명장 역시 일을 시작한 후 5년이 지나서야 겨우 목수로서 망치 하나를 쥘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게다가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현장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 실정에 맞지 않는 전달사항이 내려올 때마다 실무자로서 자신의 견해를 열심히 피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 논리야 어쨌든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에 대응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한참의 고민 끝에 돌파구를 떠올렸다. 자신의 실력을 한마디로 설명할 만한 것, 그건 바로 자격증이었다.
 

실력을 증명하며 만들어진
자신감

이준문 명장이 가장 애틋하게 여기는 자격증은 건축목재시공기능장. 당시만 해도 가르쳐 주는 곳이 따로 없었던 만큼 준비과정 역시 다사다난했다.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한 곳을 무작정 찾아다녔고, 시험이 치러지는 곳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시험 모습을 속속들이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들여 기능장에 오른 순간의 가슴 벅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같은 해 전북에서 열린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건축목공시공 분야 금메달까지 획득하면서 기쁨은 배가 됐다.
 


“회사에서 독립해 사업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IMF 시기와 맞물리면서 부도를 맞이했죠. 일을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힘든 일이 여럿 있었지만 결국 자력으로 일어났고 지금의 성취를 일궜습니다. 일에 대한 자신감은 그런 경험이 쌓이며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난 2016년엔 건설현장에서 사용했던 기존 도구들의 불편함을 개선해 특허까지 받았다. 시·군청에서 발주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사공정 단축 및 원가 절감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이는 맡은 일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분야까지 섭렵해가며 건축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덕분일 것이다.

“건축목공시공 분야 명장으로 선정되긴 했지만 저는 목재 외에도 시멘트, 철근, 콘크리트 등의 소재도 다룹니다. 자재며 설계, 시공, 마감 등의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죠. 건축구조에 따른 하중도 계산합니다. 전체적인 과정을 아우를 수 있게 되면 업무효율도 그만큼 개선할 수 있습니다.”
 

나에겐 어떤 예술품보다
값진 것

명장의 시간표에는 여백이 없다. 평일이면 그의 손길이 필요한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자재를 다루는 데 여념 없고, 주말에는 작업실에서 기능경기대회며 각종 기술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4월 열리는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11명의 훈련교사로서 그의 책임감은 여느 때보다 막중하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저도 주말을 투자하지만 지금 작업실에서 연습 중인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일엔 모두가 현장에서 일하니까요. 힘든 것보다는 기특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계속 열심히 해서 우수숙련기술자로 성장했으면 하죠. 명장이 되면 더 좋고요. 실력 있는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면 건축목공 분야에도 활기가 돌 겁니다.”
 


일을 시작했을 무렵을 돌이켜 보면 무작정 돌진하기 바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남은 자재를 가져와 연습하기도 했고, 현장에서 몰래 가져온 도면을 보며 독학한 시간도 있었다. 이따금 찾아오는 어려운 일들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 위기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만 생각했고 결국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저에겐 완성된 집이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늘 완벽을 추구하며 일을 하지요. 건축주가 집을 둘러보며 만족한 표정을 지을 때면 그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100%의 집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하는 일들은 모두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하는 거예요.”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폭넓은 시야로 건축을 마주하겠다는 마음으로 늦깎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교로 진학해 현재 건축학도로서 새 삶을 개척해나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초심으로 전성기의 삶을 누리는 이준문 명장. 그의 다음 도전기는 무엇이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업데이트 2021-04-1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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