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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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기업에 입사했다. 4학년 때 해당 기업 장학생에 선발되었고, 인턴 생활을 했기에 회사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직무에 대한 책임감은 걱정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많은 시간이 지나있었고, 28세 마지막 12월이 되었다. ‘나’를 되돌아보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내 가족이 내 장례식장에 왔을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답이 나왔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나의 역량을 발전시키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다가 팹랩의 공지를 봤다. 해외개발도상국에 파견 나가 3D 프린팅, 아두이노 코딩, CNC머신 등 디지털 교육을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외교통상부 산하 기관인 KOICA의 투자금으로 진행되었고, 키르기스스탄 청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여, 스타트업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제는 비슈케크 수도에 있는 대학교 KSTU(Kyrgyzstan State Technology University) 내에 1)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축하고, 2) 수업 자료 및 데이터 구축 3) 교수와 선발된 학생들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 4) 학생들 대상으로 창업동아리를 운영하여 시제품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2019년 1월부터 3개월간 팹랩 서울에서 메이커스페이스의 장비교육, 관리 및 운영 방법에 대해 배웠다. 나를 포함한 3명의 후보는 3월 초 발표평가와 영어 면접을 했고, 나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3월 15일 회사를 나와 3월 18일 키르기스스탄에 도착했다. 그리고 3월 말, 함께 일할 인원을 충원하고 사무실 구축을 위해 책상, 프린터 등 집기 구매를 했다. 키르기스스탄 지부 KOICA, 수도 비슈케크에 있는 굿네이버스(NGO 단체) 등 다양한 기관을 만나며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 공유와 자사 사업 브리핑을 듣는 시간을 가지며 4월이 되었다.
 


4월 초 2주간, KSTU 내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을 공사할 건설업체 입찰을 진행했다. 이후 디지털 장비 구입도 진행했다. 팹랩 사업현지 행정 담당자 KSTU 소속 베네라(Venera) 부장은 키르기스스탄에 들어와도 장비를 받기까지 몇 달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미 원조사업을 하고 있던 독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KOICA 이사의 방문이 잡혀있는 7월 초까지는 반드시 장비 설치가 끝나야 했다. 베네라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출발한 디지털 장비는 7월 3일 키르기스스탄 공항 터미널에 도착했다.

주 키르기즈공화국 한국대사관의 대사는 팹랩 사업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대사의 적극적인 대처로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화물을 받았고 학교에 도착해 행사 준비를 완료하고 나서야 퇴근했다. 베네라 부장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에 대한 성취욕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보기에도 한국인의 일 처리 속도는 놀라웠던 것이다.

2019년 7월 18일, KSTU 총장과 KOICA 이사는 함께 팹랩 비슈케크(Fablab Bishkek)를 찾았다. 팹랩 준공식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2019년 8월부터 선정된 교수들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9월 한 달 동안 시제품 제작을 하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교수들은 프로젝트에 책임감을 느꼈고 학사 일정을 조율해 9월에 재교육을 받기로 했다. 2019년 9월 개학과 동시에, 선발된 대학생 대상으로도 교육 일정이 있어 업무량은 2배로 증가했지만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수업 이해도가 빨랐다. 속도감 있게 강의를 진행할 수 있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었다.
 


팹랩 프로젝트의 본질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인적자원을 개발하면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열정으로 무장된 학생들은 매일 팹랩을 방문하여 시제품 제작에 몰입했으며, 팹랩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9년 12월 홈커밍 데이, 창업동아리팀의 시제품 시연이 있었고, 수업을 수강했던 교수, 학생들을 초대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말, 팹랩 프로젝트의 1년 차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2019년 12월의 키르기스스탄은 세계 1위의 공기 오염국가였다. 겨울날, 공기 오염은 편서풍을 통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확산하여 간다. 지구는 국가라는 인위적인 경계로 나누어져 있지만, 환경은 국경을 상관치 않는다. 그렇게 최악의 공기오염을 경험함으로써 환경의 중요성을 몸소 느낀 것이었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화장도구에 전기·전자를 결합하여 디바이스를 만들고자 한다. 쿠션 용기를 영구재로서 사용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감소하는 것이 목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순간은 세상을 확장하여 바라보는 자양분이 되었다. 삶의 형태는 다를 수 있어도 그 본질은 우리와 같았다. 지구라는 겉면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인류는 경계를 만들고 구분하여 네 것과 내 것을 한정하여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데이트 2021-03-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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