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격증 그 이상의 가치
    동아리에 활기를 불어준 관광통역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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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황폐했던 나라가 순식간에 발전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한국의 경제구조 변화와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신기했다’, ‘엄청 재미있었다’. 학생의 ‘엄청 재미있었다’라는 말만큼 교사에게 성취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 있을까?

지루하기 짝이 없던 나의 동아리 시간은 적정 인원을 넘겨 더는 받아줄 수 없을 만큼 학교에서 인기 있는 동아리가 되었다. 이 모든 마법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만난 순간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었다.

* 2020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

중·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한 지 정확히 10년이 되자 권태감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능 이후 3학년의 영어 시간은 거의 빈 교실에 대고 라디오 틀어놓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놀렸다가는 바로 ‘수업권을 침해했다’라는 민원이 들어온다. 영어 수업시간에도 이런 식인데 하물며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동아리 수업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통상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교사 본인의 과목 특성에 맞춘 동아리를 개설하길 원한다. 이러니 영어 교사인 나의 선택지 자체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중등학교 영어 교사 경력이 관광통역안내사 영어시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노력
그때부터 과감히 서점에서 필기 문제집을 구매하고 독학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오답 노트 만드는 작업을 반복했다. 만드느라 얼마나 가위질과 풀칠을 많이 했는지, 손아귀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물론, 이건 내가 문제를 많이 틀린 탓에 정리할 게 그만큼 많아서였다. 그렇게 필기 공부에 지친 와중에, 국내여행안내사도 동일한 필기시험을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공부하는 거 국내여행안내사도 따자는 마음에 용감하게 자격증 두 개를 한꺼번에 접수했다. 당일 오후 가채점 결과가 합격선에 든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기까지 붙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명색이 영어 교사인데, 영어로 말하는 시험을 포기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이 어려워할 때 나도 이렇게 극복했다고 할 만한 성공담이 있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실기까지 시간은 너무 촉박한데, 양은 많고 그렇다고 전부 모범 답안을 외울 수도 없는지라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반드시 정보를 외워야만 하는 문화유산, 의견을 묻기도 하는 관광지식, 절차를 알아야 하는 가이드 실무 등으로 주제를 분류해서 말하기 양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은 수첩에 주제와 키워드를 적은 뒤 약 두 달간 틈만 나면 말하기 연습을 했다.
 

 

문화홍보대사반 동아리 창설
우여곡절 끝에 관광통역안내사와 국내여행안내사를 모두 취득하자 열심히 공부했던 걸 그냥 썩히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서울 시내의 문화유산에 대해 학습하고, 학습한 내용을 영어로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아리다.

학생들이 동아리에 가입하면, 가장 먼저 대한민국의 기초정보를 영어로 배우게 된다. ‘역사’나 ‘한국지리’, ‘일반사회’ 등의 과목을 통해 부분적으로는 배우지만, 막상 대한민국의 인구, 면적, 길이와 같은 정보나 공휴일, 화폐의 인물 및 도안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그것을 영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는 더욱 모르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런 걸 훨씬 궁금해하는데도 말이다. 다음엔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대해 영어로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에 세계인이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많다는 데서 학생들은 벌써 놀라는 눈치다.
 

실습을 위한 문화유산 탐방
이렇게 기초지식을 쌓은 후 문화유산 탐방에 나선다. 다행히도 학교가 서울 강북에 있어 창덕궁, 종묘, 정릉 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근방이고 서울성곽은 걸어서도 갈 수 있다. 아울러 인사동, 북촌, 익선동, 서촌 등의 관광지가 가깝다. 학사일정에 따라 다른데,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지하철을 타고 코엑스와 선정릉, 봉은사, 롯데월드까지도 탐방한다.

탐방 전에 학생들은 영어로 문화유산 소개문을 써보고, 문장을 수정하여 돌려주면 돌려받은 소개문을 들고 탐방하며 본인이 느끼고 경험한 대로 소개문을 고친다. 그리고 완성된 소개문을 연습하여, 나중에는 실제로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영어로 문화유산을 소개할 수 있도록 한다.
 

코로나19로 찾아온 동아리 위기!
2020년 초,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우리나라를 찾아왔고 탐방이 주된 활동이던 나의 동아리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온라인 영상 수업에 맞추어 동아리 구성을 바꾸었다. 탐방을 할 수 없는 큰 제약이 생겼지만, 그 대신 서울 이외의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까지도 학습에 포함할 수 있었다. 그간 몰랐는데 문화재청, EBS 등에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을 정교하게 소개한 영상 자료가 놀랍게도 많았다.

그래픽태블릿과 전자펜 및 녹화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문화유산 설명 영상을 촬영하고, 탑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수업 반응을 기다렸다.
반응은 정말 좋았다! 이 글 첫머리에 나열된 문장들은 현재 온라인 동아리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반응이다. 학생들은 정말 고맙게도 온라인으로도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에 대해서 즐겁게 학습하고 있었다.

풀뿌리 외교관 길러내는 것이 목표
이처럼 관광통역안내사는 나에게 혁신적인 동아리 운영을 가능케 해주었다.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은 질곡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학습했던 장소들을 기억하여 방문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때 이러이러한 점에서 가치 있다고 했지’ 하면서 내용도 되새기고,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외국인들에게 다가가 자랑스럽게 우리의 위대한 유산을 소개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능력 있는 ‘풀뿌리 외교관’을 길러내는 것이 내 국가자격 취득의 최종목표이다.
 

 

업데이트 2021-02-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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