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며
    윤동주문학관과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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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의 아명은 ‘해처럼 밝은 아이’인 ‘해환’이었다.
그가 처음 지으려던 시집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아닌 「병원」.
암울한 일제강점기, 온통 환자들인 세상에서 자신의 시가 병원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광복을 불과 몇 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집은 3년 후 세상에 나와 오늘날까지 빛나고 있다.
시인 윤동주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윤동주문학관
윤동주의 흔적은 시인이 다녔던 연세대(당시 연희전문학교), 정병욱과 함께 하숙했던 소설가 김송의 집 터 그리고 시인이 올랐던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윤동주문학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한 윤동주문학관은 2012년 문을 열었다. 약해진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물을 흐르게 하던 청운수도가압장은 제1전시실인 시인채로 변신했다. 가압장 옹벽 뒤에서 발견한 2개 물탱크 중 1개는 지붕을 걷어내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로, 나머지 1개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후쿠오카형무소로 형상화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이 머무르는 열린 우물(제2전시실)과 한 군데만 빛이 들어오는 닫힌 우물(제3전시실)은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 된다. 윤동주문학관 뒤편에는 시인의 언덕이 있다.
윤동주 하숙집 터는 더 이상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시인을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윤동주문학관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관람시간 | 10:00~18:00
휴관일 | 매주 월,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 | 02-2148-4175

윤동주 하숙집 터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57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연희전문에서 함께 수학한 정병욱과 강처중이 없었다면 윤동주 시집 출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윤동주는 시집으로 내려했던 자신의 시 19편을 필사해 스승 이양하 교수와 벗 정병욱에게 각각 맡겼다. 자신도 원고를 갖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지만, 정병욱에게 전한 원고만이 남았다.
 


1944년 일본군에 끌려가게 된 정병욱이 광양에 계신 어머니에게 원고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마루를 뜯고 항아리 안에 숨겨 놓았던 윤동주의 육필 원고는 징병에서 살아 돌아온 정병욱에게 무사히 전해졌다. 윤동주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달한 강처중은 1947년 2월, 자신이 기자로 몸담고 있던 경향신문을 통해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발표했다.

강처중과 정병욱은 윤동주가 남긴 시 31편을 묶어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고, 시인 정지용은 시집 서문에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라고 썼다.

윤동주 원고를 보관했던 광양의 주택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1925년 망덕포구에 양조장과 살림집을 겸해 지은 건축물은 등록문화재 제341호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으로 명명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병욱 가옥
주소 |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
관람시간 | 10:00~17:00
휴관일 |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 | 061-797-3333 

업데이트 2019-08-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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