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20여 년간 유지해오던 대표이사직 연임에 실패하고 물러났다. 대한항공의 주식 지분의 11.56%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 기타 소주주들과 연대하여 주주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스튜어드십(수탁자의 직무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에게 퇴직 이후에도 일정액의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일정한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스튜어드(수탁자 또는 관리자)로서의 전문적 관리능력과 성실한 자세를 바탕으로 위탁자(연금가입자)의 신뢰를 확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 투자기업의 경영권까지 개입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규정(스튜어드십 코드)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취지는 기타 금융기관 등 기관투자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스튜어드십 코드 운용방향은 잘못하면 국민연금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정부(정권)가 국민연금을 통하여 사기업(私企業)의 경영권에까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스튜어드십의 기본인 수탁자로서의 성실관리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연금기금은 종업원(근로자)들의 예금이다. 연금관리자들은 현재의 종업원들의 미래 재정에 봉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곳 혹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봉사해서는 안 된다”(「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고 경고한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불가피하게 투자기업의 경영권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정치권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연금가입자들의 신뢰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기를 기대한다.
스튜어드십은 비단 기관투자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비록 금전적인 위탁은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의 위탁자인 고객의 신뢰를 못 받으면 조직의 존재이유가 없어진다. 다시 드러커의 말을 빌리면 모든 조직은 조직 구성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 밖의 고객을 위하여 존재한다(「변화 리더의 조건」). 학교는 학생을 위하여, 병원은 환자를 위하여, 기업은 고객(소비자)을 위하여, 연금기관은 연금가입자를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조직의 구성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조직을 종종 보게 된다. 공무원들이 국민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 국가의 국민은 불행하다. 세금을 낸 위탁자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에 대한 신뢰는 조직 구성원들의 직무능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 중에서도 중요도를 따지면 능력보다 성실성이 우선한다.
성실성은 정직과 공정을 기초로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면 그 능력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능력이 없는 편이 낫다. 유능한 전문가들이 능력을 악용하여 우리를 실망시킨 사례들은 허다하다.
도산 안창호는 국민교육의 3대 목표인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을 말하면서 순서를 바꿔서 덕육, 지육, 체육이라고 했다. 지식교육보다 도덕교육이 먼저라는 것이다. 우리가 의사를 신뢰하는 것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직하게 치료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모자라면 정직하게 더 능력 있는 의사를 찾아가도록 소개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직업능력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유난히 청렴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스튜어드십의 기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