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로 가는 길
    한국청렴연구원 원장 양세영 (홍익대 겸임교수)
  • 5847    

뉴질랜드는 덴마크와 함께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늘 세계 1, 2위를 다툰다. 부패인식지수는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에 부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를 나타내 준다.

뉴질랜드는 2016년 덴마크와 공동 1위, 2017년 단독 1위, 2018년 덴마크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무엇이 뉴질랜드를 청렴 선진국으로 만들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올해 초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멀고 긴 흰 구름의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뉴질랜드는 예상대로 곳곳에 미루나무와 양떼가 평화롭기만 한 청정지역이었다. 뉴질랜드는 남한 3배 가까운 면적이지만 인구는 1/10에 불과하다.

넓은 면적, 적은 인구로 인한 쾌적함과 높은 소득 및 복지수준이 언뜻 보기에 낮은 부패도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낮아 경쟁 압력이 적고 생활수준이 높으면 반칙을 통해서라도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유인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 조건일 뿐 국가청렴도가 지속적으로 수위권에 있다는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치자금과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중대비리조사청(SFO ; Serious Fraud Office)의 존재를 비결로 들고 있다.

SFO는 중대하고 복합적인 부패혐의 사건에 대해 수사와 기소를 독립적으로 실행하는 강력한 반부패 기구로서 공직사회의 비리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두어 왔다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구가 최상위 수준의 청렴국가를 담보한다고는 볼 수 없다. 동남아시아만 해도 싱가포르와 홍콩은 물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도 강력한 반부패 수사기관, 나아가서 부패전담 재판소까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근본적인 비결일까? 사실 방문기간 동안 위생이나 친절도, 물가 등 외형적인 면은 우리나라 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고 청렴의 어떤 특별한 요인도 찾기 어려웠다. 결국 많은 사람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해 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무형의 비결은 바로 사회문화였다.

뉴질랜드의 사회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정직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전통, 재산과 학벌 등에서 남과 비교하지 않는 건강한 개인주의, 부자들도 의식주는 일반 서민들과 다르지 않는 근검절약 풍토, 비리를 간과하지 않는 높은 신고의식, 행정절차의 투명한 공개주의 등과 같은 요소가 국민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공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직차원에서도 높은 수준의 조직문화는 다른 기관이 모방하기 힘든 핵심역량으로서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최고수준의 청렴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뉴질랜드의 비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문화나 조직문화의 혁신이 가장 근본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문화적 특성은 국민의 의식에 내재화되어 있는 데다 역사적 산물이다. 더구나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것으로 단기간에 배워서 따라 잡기는 힘들다. 따라서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윤리적 사회문화와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함과 동시에 무언가 단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바로 문화친화적 제도나 시책이다. 뉴질랜드의 SFO처럼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작동을 통해 사회문화의 변화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구를 문화 친화적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시행 중인 청탁금지법이나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수처가 우리나라의 심각한 부패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분명한 취지를 갖고 오랜 논의를 통해 만들어진 제도라 하더라도 청렴한 사회문화를 수립하려는 지속적인 노력보다 우선될 수는 없고 그 자체도 얼마나 문화 친화적인지 점검해 봐야하고 필요하면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을 예로 들면, 방지 시책보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되는 내부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쇄신하는 노력이다. 즉 존중의 가치가 구성원들의 의식에 내면화할 수 있도록 부단한 교육과 소통을 이뤄야 한다. 여기에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책을 고안해 실행할 때 최우수 청렴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뉴질랜드로 가는 길, 비록 멀더라도 문화적 기초를 쌓아가며 적합한 시책을 실행하다보면 머지않아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업데이트 2019-06-27 12:38


이 섹션의 다른 기사
사보 다운로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