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美)를 빚어온 47년의 여정
    2025년 ‘숙련기술인의 날’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미용 명장 정매자 정정원헤어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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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매자 명장은 늘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예쁜 것을 보면 꼭 만들어 보고 싶었고, 손끝으로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다.
꽃잎을 다듬고, 헝겊을 오려 인형 옷을 만들던 그 시간은 결국 미용의 출발점이 됐다.
스물아홉, 결혼과 출산을 지나 시작한 미용의 길은 47년째 이어지고 있고, 정매자 명장은 여전히 쉼 없이 달리고 있다.
 

 

미용 기술의 뼈대를 단단히 다진 시간

29살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정매자 명장은 봉사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다졌다. 지역 봉사부터 군부대, 복지기관까지 닿는 곳마다 그녀의 손길이 이어졌다.

 

“그땐 기술이 서툴러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있는 자리마다 줄이 길게 섰죠. 그 성취감이 커서 ‘아, 나는 이 일을 잘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이후 그녀는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했다. 미용실을 열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한편, 일본 도쿄 미용학교에서 10개월간 업스타일을 배우며 손끝의 감각을 새롭게 길렀다. 한국으로 돌아와 웨딩 현장에서 실무를 이어가던 그녀는 커트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비달사순아카데미로 향했다. 3개월간 30가지 커트를 체득하며 기술의 뼈대를 다진 그녀는 새로운 확신을 얻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장을 지키며 동시에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서울보건대학(현 을지대학교)에서 13년간 강사와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몸으로 익힌 실질적인 기술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정매자 명장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기술이 감각에만 머물면 발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기와 함께 이론의 중요성도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그녀의 가르침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닌 성장의 과정이었다. 학급을 이끌 때는 분위기를 살피고, 기능경기 지도를 할 때는 1:1의 마음을 다했다. 그렇게 배출한 제자들은 미용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전국미용경기대회에서도 수많은 수상자를 냈다.

 

전통과 창작을 잇다

현대 미용을 하던 정매자 명장은 어느 순간 시선을 전통으로 돌렸다. 사료와 벽화, 문헌을 토대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머리를 복원·체계화해 교재로 엮었고, 전국 대학에 보급했다. 교재에는 왕의 면류관과 익선관, 의녀의 차액, 기녀의 트레머리, 조바위·어우동, 양반의 가채와 똥머리까지 시대별 머리양식을 공정과 완성 단계로 정리해 담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만 7천 점이 넘고, 이를 보관한 컨테이너만 해도 일곱 개에 달한다.

 

“그 시대의 미감을 참고해 문헌과 자료를 정리하고 교재로도 엮었어요. 미래에 제가 없어도 작품이 살아 움직였으면 해서 디자인 등록과 특허로 남겨두었죠.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학교에서도 물러났으니, 현대 머리는 젊은 세대에게 맡기고 저는 전통의 역사를 알리는 일에 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정매자 명장의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통은 무겁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정매자 명장은 오히려 그 무게를 가볍고 세련되게 표현하려 한다. 살롱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현대적 스타일을 연구하며, 과거 장미 모양 기술 작품을 족두리 형태로 재해석한 ‘장미꽃 만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화려한 색감과 매끈한 빗질, 기술적 완성도, 전통 족두리의 조형미를 조화시켜 총 30점의 작품을 완성 중이다.

 

끝없는 명장의 여정

정매자 명장의 손끝은 전통의 미감을 넘어서, 기술의 혁신으로 뻗어간다.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그녀는 오늘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바닥에서 엉키는 드라이 전선을 위한 설비를 고안하고, 항공 모터 기반 드라이어를 기술 제휴로 완성했다. 슬라이싱·스트로크· 단면 커트를 아우르는 커트 디자인과 드림날 테크닉 등도 연구해, 지금까지 총 17건의 디자인 등록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꾸준한 연구와 실천은 수많은 상으로 이어졌다. 동장·구청장·시장 표창부터 장관상, 국무총리상 2회, 그리고 대통령상까지. 10여 년에 걸쳐 쌓아온 노력이 차곡차곡 인정받은 결과다. 특히 2025년 ‘직업능력의 달’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상을 받으며, 미용 기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말한다. ‘상보다 중요한 건 기술 나눔’이라고.
 

 

“앞으로는 봉사나 멘토링, 취업이 어려운 여성분들을 위한 기술교육으로 제 시간을 더 채워가고 싶어요. 지금도 누가 ‘기술 좀 봐달라’ 하면 도와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강의 자료도 30분, 40분, 50분, 60분짜리로 다 만들어놨죠. 어디서든 불러주기만 하면, 바로 나가서 전할 수 있게요.”

 

정매자 명장의 하루는 지금도 쉼이 없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달려가고, 틈이 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며 손끝의 감각을 이어간다. 그녀에게 미용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곧 삶 그 자체다.그런 그녀의 마지막 꿈은 ‘미용박물관’을 세우는 일이다.

 

“7천 점이 넘는 작품과 공정 기록, 교재, 문헌재현물까지 모두 한데 모으고 싶어요. 명예로는 충분했고, 이제 남은 건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전시와 헤어쇼, 멘토링을 통해 우리 머리의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 더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평생 쌓아온 작품과 기술, 그 속에 담긴 시간과 마음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여정이다. 언젠가 그곳에서, 미용을 사랑하는 후배들이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며 또 한번의 ‘할 수 있다’를 마음에 품길, 그녀는 오늘도 소망하고 있다.
 

 

업데이트 2025-10-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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