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작은 신호음에서 시작된 함영만 명장의 여정은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여정은 여전히 무거운 장비 가방을 짊어진 채 현장으로 향한다.
수십 년간 이어온 땀과 헌신은 결국 뜻깊은 결실로 돌아왔다.
그 길의 가치를 증명하듯, 최근 무선통신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무선통신 분야의 명장이자 동탑산업훈장 수여자로서 그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 이 분야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후배를 양성하는 일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는 그의 말처럼, 함영만 명장의 발걸음은 오늘도 전파와 함께 흐르며 다음 세대를 향하고 있다.
무선통신 분야의 개척자
“중학교 3학년 때 물상이라는 과목에서 광석 라디오를 조립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수업 시간에 다 만들지 못해 집에 가져와서 이어서 했죠. 당시 집에는 전기가 없어서 숯불에 달군 인두로 납땜을 하고, 어머니께 졸라 철물점에서 철사를 사다가 뒷산 높은 나무 위로 안테나를 걸쳐 올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라디오에서 ‘띠띠띠띠-이’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나중에 보니 그게 바로 모스 부호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신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이 있구나’ 깨달았고, 그렇게 통신사라는 세계를 알게 됐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작은 신호음은 소년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 길은 곧 전자와 통신, 그리고 무선의 세계였다. 중학교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간 그는 대학에서는 전자, 대학원과 박사 과정에서는 통신과 산업 정보 시스템을 공부하며 기초부터 실무까지 전자·통신 분야를 꿰뚫어 왔다. 이후 그는 통신사 자격을 발판으로, ‘정보통신 주식회사’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며 방송국 송출 장비와 각종 무선·통신 설비를 다루는 전문가로 살아왔다. 당시 통신사는 모스 부호와 무선 신호를 주고받으며 선박·항공·방송 등 중요한 현장을 지키는 직업이었고, 현장 엔지니어로서 그의 일상은 늘 전파와 함께였다. 대부분의 현장은 높은 산 꼭대기. 무거운 장비를 직접 짊어지고 오르내려야 했다.
“방송국에 장비를 납품하고 정비하는 일을 주로 했죠. 방송 장비라는 게 고장도 나고 수명 관리도 필요하다 보니 유지보수는 물론 필요할 때는 시설 공사까지 직접 맡아야 했습니다. 현장은 대부분 평지가 아니라 중계소가 자리한 높은 산 꼭대기였어요. 차로 접근이 불가능한 곳도 많아서 장비를 짊어지고 걸어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일은 늘 운동처럼 몸으로 부딪히며 해온 일이었습니다.”
그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3년, 아날로그 TV 종료 이후 디지털 TV로 완전히 전환되던 시기였다.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국 주요 송신 장비들의 채널을 2013년 10월 16일까지 모두 개조·재설정해야 했거든요. 미국이나 독일산 고가 장비들이라 개조 난이도가 높았고, 측정 장비로 모든 파라미터들을 방송 품질 기준에 맞춰, 정확하게 조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두 달 동안 밤낮없이 뛰었고, 결국 그날 아침까지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모스 부호 대신 위성통신과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면서 통신사라는 직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갔고, 마침내 2023년 말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변화의 흐름을 일찌감치 감지한 그는 통신사에서 기술사로 방향을 전환하며, 현장의 기술을 이어갈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명장, 그리고 동탑산업훈장
2008년부터 함영만 명장은 ‘영인 IT 기술사 사무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TV 송신기와 AM/FM 송신기를 비롯해 각종 방송 설비 유지보수는 물론, 공사·시공·감리까지 폭넓게 맡는다. 지자체 청사, 공공기관, 공항, 군, 철도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정보통신 공사 현장에는 출입차량 통제 시스템, CCTV, LAN/랙, 배선, 각종 통신 설비가 들어간다. 함영만 명장은 이 설비들을 직접 시공하고, 준공 검사와 감리를 통해 ‘제대로 되었는지’를 꼼꼼히 확인한다. 강남구청, 인천공항, 해군, 철도공사 등 굵직한 현장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방송은 결국 시간이니까 송출에 사고가 나면 큰일이 나죠. 케이블 하나 연결할 때도 각이 틀어지지 않게 하고, 배선은 직각과 정렬을 맞춰야 해요. 장비는 보는 순간 상태가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해야 하고요. 그래서 제 철칙은 언제나 ‘정확과 정돈’이에요.”
회사에 다닐 때와 직접 운영할 때는 확연히 달랐다. 예전에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면 됐지만, 지금은 영업, 기술, 관리까지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1971년 R/TV 기능사보(현재는 없음) 자격 취득을 필두로 기능사 2급·기능사 1급·기능장·산업기사·기사·기술사 자격을 모두 거쳤고, 전자·통신 관련 자격증은 물론 전기·소방 등 부가 자격까지 챙겼다. 그 과정에서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고, 2005년에는 명장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그는 또 한 번 큰 영광을 안았다. 바로 ‘동탑산업훈장’이다.
“회사 일 외에도 국가기관·지자체·공공기관에서 심사, 평가, 면접위원 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제도 개선, NCS(국가직무표준) 개발, 그리고 대학·직업훈련기관·중고교에서 강의까지 현장 기술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늘 노력해왔거든요. 그런 활동 기록들이 공적으로 인정받았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전파는 곧 삶이었다
이번 동탑산업훈장 수상은 의미가 더욱 깊다. 무선통신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이런 상을 받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번 수상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이 길을 이어가야 할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분야는 단기간에 되는 기술이 아니에요. 최소 10년은 경험해야 일이 손이 붙습니다. 특히 무선통신은 장비가 워낙 고가라 교육기관에서 구비하기가 어렵습니다. 네트워크 장비는 흔하지만 RF, 무선 장비는 드물죠. 그래서 저는 제 장비, 수천만 원짜리를 직접 들고 나가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망가지면 큰일이지만, 누군가는 전해줘야 대가 끊어지지 않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도 분명하다. 함영만 명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건축물 유지보수 분야로 공부의 폭을 넓혀 새로운 전문성을 쌓으려 한다. 무엇보다 ‘명장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후배 인재양성에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함영만 명장은 이야기한다. 기술을 터득하고, 현장에 적용하며 몸으로 부딪히는 배움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온다고. 그리고 그의 삶이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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