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꽃으로 이어온 길, 그 끝에 선 이름 ‘명장’
    대한민국 용접분야 명장 임형택 (주)태강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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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 정통한 이들은 대개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이 걸어갈 길을 스스로 정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믿고, 묵묵히 갈고 닦으며 한 길을 걸어간다.
임형택 명장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열일곱 소년,

기술로 미래를 준비하다

1980년대 초반, 산업이 한창 성장하던 시기. 중학생이던 임형택 명장은 공부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당시 공업계 고등학교의 인기가 높았던 분위기 속에서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자연스레 공고에 진학하게 된다. 그의 전공은 ‘배관용접과’. 용접이 정확히 어떤 작업인지도 모른 채 입학한 그는, 처음 실습장에서 용접 토치를 쥐던 날의 생생한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스파크가 튀고, 금속이 녹고, 그게 서로 붙는 순간이 정말 신기했어요. 혹시 감전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몇 번 실습을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리고 나서는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에 임했습니다.”

 

실습 시간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습했고,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기술을 바탕으로 철공소 사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순수한 꿈을 품기도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취업으로 이어지는 현장 실습에 참여하며 한 회사에 실습을 나가게 됐고, 책임감 있게 임하는 그의 모습은 현장 관계자들의 눈에 띄었다. 졸업과 동시에 정식 채용을 제안 받으며 그렇게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당시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러했듯, 다가올 군 입대를 준비하며 그는 ‘기술병’으로 복무하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했다. 직장을 마친 후 야간에는 실기학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전기 용접, TIG(티그) 용접, 가스 용접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밤낮 없이 일과 실습을 병행하며, 마침내 자격증을 획득하고 기술병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군 복무 중에도 그의 기술에 대한 갈망은 식지 않았다. 군부대에서 모든 용접 관련 업무를 맡아 수행했고, 저녁과 주말에는 용접기능사 1급 이론시험 공부를 병행해 합격하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실기시험 합격 방법을 고민하던 중, 당시 정수직업훈련원에서 향상과정 모집 공고를 보고 1년 과정에 지원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정수 직업훈련원에서 실습 연습에 몰두하면서, 자격증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직장과 훈련원을 오가며 1년 사이에 용접 기능사 1급, 제관 기능사 1급, 배관 기능사 1급 등 세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는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실력을 쌓고, 자격을 획득해 기술인의 길을 착실히 걸어갈 수 있었죠.”
 

 

기술자에서 기술기획자로, 그리고 한 회사의 대표로

용접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한 후 면접 제안을 받았고, 크레인을 제조하는 특장차 회사에서 근무하며 보다 체계적인 용접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해외 연수와 교육을 통해 특장차 제작 용접 기술을 한층 발전시켰으며, 무려 20년간 근속했다. 그야말로 ‘한 우물’ 만 판 시간이었다.

 

“그때는 그냥 기술 하나 믿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단순히 잘하는 걸 넘어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기술자에서, 2006년 첫 창업에 나서게 된다. 조그마한 가공 중심의 공장이었다. 이후 2007년 구조물 용접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태강기업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초기에는 ‘스크랩 그래플’이라는 고철 집게를 직접 설계하고, 용접과 제작까지 마친 뒤에 월 50대 정도 납품하며 시작했어요. 당시 직원은 저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저는 용접도 하고, 납품도 하고, 설계도 보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냈어요.”

 

이후 다양한 구조물 용접 의뢰가 늘었고, 크레인 붐 관련 용역도 이어졌다. 그렇게 하나하나 실적을 쌓아가며 회사를 키워냈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기술 기업의 궤도에 오른 건, 2013년 정부 R&D 과제에 처음 도전하면서부터였다. 지원금 1억 원을 받아 전봇대 운반과 지반 천공 작업에 사용하는 특수 크레인인 ‘오거 크레인’을 특장차 형태로 개발한 것이다. 일반 트럭에 오거 장비를 얹어 구조물을 용접·설치한 맞춤형 차량으로, 특장차 시장을 겨냥한 첫 번째 시도였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현장은 정직했고, 그는 다시 돌아보고 다시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오거 크레인을 수십 년간 다뤄온 사장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면 구매하시겠어요?’, ‘어떻게 하면 잘 만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질문하고 들은 이야기를 다 메모했고, 그 모든 피드백을 제품 개발에 반영했습니다. 특장차는 구조물이 튼튼해야 하고, 그 핵심은 바로 ‘용접’입니다. 저는 20년 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이 제품에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그렇게 1년여에 걸쳐 신제품이 완성됐죠.”

 

그 제품은 단순한 전신주 설치용을 넘어, 토목 공사에 적합한 오거 크레인으로 재설계됐다. 더 깊고 견고하게 뚫고, 흙막이와 기초 빔 작업에도 견딜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했다. 시장의 니즈를 정공법으로 돌파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경기도의 한 장비업체 부지에서 진행된 데모 시연 현장에서 수십 년 경력의 전문가들이 장비를 테스트해본 뒤, 성능평가에 대해 그에게 ‘엄지 척’을 보여주셨다.

 

“30~40년 경력의 전문가들이 장비를 시운전하고 나서, 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엄지 척’을 해줬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많은 분이 같은 반응을 보여주니, ‘아, 이번엔 해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12대를 계약하게 됐죠. 중소기업 입장에선 엄청난 일이었죠.”

 

현재 태강기업은 특장차 업계에서 약 70%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라는 자부심으로 품은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술은, 지금도 누군가의 현장을 더 튼튼하게, 더 안전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기술 명장이 나아가야 할 길

돌이켜보면, 임형택 명장은 기술인으로서 정석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다. 공업계 고등학교 용접과에 진학해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기술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기술병으로 복무하며 경험을 쌓았으며, 이후 특장차 회사에서 고도화된 숙련기술인으로 거듭나며, 더 깊은 학업의 열정으로 학점은행제와 대학원 과정을 통해 학사·석사·박사까지 기술 기반의 학문을 이어갔다. 회사 경영과 병행한 박사 과정은 하루 세 시간 수면으로 버틴 고된 여정이었고, 그 끝에 마찰용접 분야 박사 학위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우수 숙련기술자’, ‘기능한국인’, ‘충북 명장’을 거쳐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명장이 된 지금, 그는 기술의 전수가 곧 책임임을 절감하고 있다. 청년들에게는 “힘든 일을 먼저 해보라”는 조언과 함께 ‘선취업 후진학’을 권하며, 사내 청년 창업 제도를 통해 직접 인재를 육성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기술로 자립할 수 있는 1% 기술 인재를 키워내는 사단법인을 만드는 것, 기술과 사람을 함께 성장시키는 새로운 생태계를 여는 일이다.
 

 

“대한민국 명장은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라는 걸 저는 세 번의 도전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준비를 아무리 잘해도,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결국 한 사람만 선정되는 자리잖아요. 백지 한 장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는 세계였어요. 그래서 세 번째 도전에서 최종 선정됐을 땐 정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한 분야에서 40년 넘게 걸어온 저에게 명장이라는 이름은 기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물론 기쁨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책임감'이었습니다. 이제는 나 하나 잘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후배들의 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 거죠.”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배 기술인들에게 나눠주고, 사람을 키우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임형택 명장이 그리는 기술인의 다음 길이다.

 

업데이트 2025-08-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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