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조선 기술의 산실, HD현대중공업.
이곳에서 대형 상선에 들어가는 각종 기계류를 조립부터 설치까지 기계 전반의 업무를 맡아 기술인의 길을 꾸준히 걸어오고 있는 박영석 우수숙련기술자.
그는 자신을 ‘게임 캐릭터를 키우듯 자격증과 경험으로 나 자신을 성장시켜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현재는 수년간 현장에서 체득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후배를 양성하고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기술지도에 힘을 쏟으며 다음 세대 기술인의 성장을 돕는 데 여념이 없다.
끊임없이 단련하는 사람
박영석 우수숙련기술자가 기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06년 HD현대중공업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직접 뜯어보고 조립하는 일을 즐기던 성격은 자연스럽게 ‘기술’이라는 세계로 이어졌다.
입사 후 그는 초대형 선박의 수백여 종류의 기계 장치를 조립하고 설치하는 업무를 맡았다. 거대한 쇳덩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 작업은 기술인으로서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임무였다. 하지만 기술인의 길은 손끝의 감각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동시에,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스스로를 단련해 나갔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듯, 공부와 경험으로 자격증을 더해가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갔다.
“저는 35살까지 기능사 자격증 하나 없던, 어떻게 보면 평균 이하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제 기술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능력과 기량을 가장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자격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국가기술자격시험 접수는 그의 ‘연례 행사’가 됐다. 기능장 2회, 기사·산업기사 4회, 기능사 4회. 많게는 1년에 열 번씩 시험에 도전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하물며 가족과 제주도로 여행을 간 날에도 밤에는 리조트에서 공부를 했고, 다음 날에는 제주 지사에서 필기시험을 치를 정도였다.
그렇게 자격증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그의 커리어도 자연스레 함께 확장됐다. 박영석 우수숙련기술자에게 기술이란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여정이었다.
기술로 위험을 줄이다
그렇게 자격증으로 다져진 이론과 수년간의 실전 경험이 맞물리면서, 그는 점점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기술자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대형 선박의 ‘더블 버텀(Double Bottom)’ 공간에서 이뤄지는 고위험 작업 공정을 개선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더블 버텀이라는 공간은 엔진이 설치되는 구역의 바로 아래에 있어요. 아주 좁고 어두운 밀폐 공간이고 조명도 거의 없다 보니 위험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죠. 공정상, 엔진 설치 후 이 공간에 진입해서 연마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작업자 입장에선 부담이 큰 공정이었죠. 항상 이 작업을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많은 연구와 고안을 거쳐 해당 위험공간에 들어가지 않고도 위 공간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이면연마장치’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그가 개발한 장치는 작업자의 안전은 물론, 작업의 효율성까지 높였다. 더블 버텀 내부에서 작업자가 머무는 시간을 약 80% 줄일 수 있었고, 보다 쾌적하고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되었으며, 큰 공수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현장의 위험을 줄이고 작업 효율을 높인 점을 인정받아, 해당 개선안은 사내 제안 포상 제도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으며, 특허 출원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또한 2025년 6월, 울산광역시 품질분임조경진대회에서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고, 8월에는 전국대회인 국가품질혁신경진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다.
나를 향한 믿음과 묵묵히 해나가는 성실함
박영석 우수숙련기술자는 ‘나’ 혼자 잘하는 기술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기술을 꿈꾼다. ‘산업 현장에서 체득한 기술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죽은 기술’이라는 신념 아래, 현재는 후배 기술인 양성에 힘쓰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CNC선반 직종의 지도위원으로 선임되어 지도자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단순 반복 훈련이 아닌, 세계 각국의 지도위원들과 도면과 기술을 교류하고 다양한 훈련 환경을 조성하며 선수의 응용력과 적응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단순히 빠르고 정확하게 작업하는 것을 넘어, 왜 이 작업을 하는지, 어떤 기준과 원리를 따라야 하는지 ‘기술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결국 값진 결실을 만들어냈다. 2024년 프랑스 리옹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는 무려 13년 만에 금메달을 이끌어내며, 기술강국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렸다.
“가장 중요한 건 작업자의 마인드입니다. 얼마나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느냐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어떤 부품은 100분의 10mm 단위까지 정밀하게 맞춰야 할 때도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기준치에 맞춰질 때 기준 안에 들었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작은 차이 하나가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결국 중요한 건 ‘지시된 작업’을 넘어, ‘내가 책임져야 할 기계’라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런 자세가 기술적인 숙련도만큼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뿐만 아니라 한국폴리텍대학 외래 교수, 기술계 고등학생 멘토링, 중소기업 기술 컨설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학 양성과 재능기부에도 힘쓰고 있다. 또 재능기부 봉사시간만 해도 무려 975시간에 달한다. 그 시간 동안 그는 기술력은 물론, 기술인으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까지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종종 학생들이 ‘내가 과연 옳은 길을 선택한 걸까’라고 진로상담을 하곤 하는데, 그 마음이 결코 남 일 같지 않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가장 필요했던 건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과, 눈앞에 놓인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성실함’이었습니다. 이를 가지고 하나하나 준비해 간다면 언젠가 반드시 기회는 찾아오고, 그 기회를 알아보는 눈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실력도 함께 따라오게 될 겁니다.”
박영석 우수숙련기술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기세’를 잃지 않고 기술력은 물론 기술인으로서의 마인드까지 갖춘, 미래기술인을 길러내며 더 많은 후배들이 ‘내 기계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언젠가,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타이틀로 그 여정의 또 다른 출발점을 맞이하고 싶다는 목표를 품고, 오늘도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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