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生)과 사(死)를 꽃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이윤꽃예술원 이윤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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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좋아 시작한 일이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어섰다.
시간은 그를 플로리스트에서 장인으로, 명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기능한국인으로 우뚝 서게 했다.
모든 것이 처음 꽃을 만졌던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품고 있는 꽃을 향한 열정 덕분이다.
이윤희 화훼 장식 대가의 이야기다.


글 ㅣ 장희주 ・ 사진 ㅣ 김태윤
 

 

꽃을 만나, 꽃으로 이룬 꿈

이윤희 대표는 꽃을 만진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꽃은 다양한 장소에서 빛난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축복의 자리에서, 격조 높은 국제 행사장에서, 장소와 의미에 어울리는 화훼 장식을 선보이며 그 공간을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2015년 한·중·일 정상회담과 같은 중요한 국제 행사에서 연출된 화훼 장식이 그의 손길을 통해 탄생했다.

 

“부모님이 꽃을 좋아하셔서 박람회나 전시장을 자주 다녔어요. 자연스럽게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죠. 20살이 되자마자 화원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꽃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전문적으로 화훼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건, 1986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다. 이미 화훼 분야에서 선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에서, 그는 7년 동안 일본 전통 꽂꽂이를 비롯해 장례 꽃 장식과 꽃꽂이를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 실력과 열정은 화훼 장식이 필요로 한 다양한 공간에서 발현됐다.
 

 

“해운대 그랜드호텔의 꽃 장식을 총괄하며 최고의 꽃 장식을 선보였죠. 다양한 화훼 기술을 선보이고 있던 터라 이미 이쪽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울산 영락원의 조중래 회장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울산에 최고의 장례식장을 만들고 싶다며 함께하지 않겠냐고 하셨죠. 다양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셨고, 큰 영감을 받아 영락원에 합류했습니다.”

 

꽃으로 빛내는 엔딩 스토리

장례 화훼가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쉽게 말해 제단의 꽃 장식을 말한다. 제단에 꽃 장식을 하는 이유는 유가족을 위로하고, 고인의 삶을 아름답게 추억하려는 의미가 담겼다. 지금은 다양한 디자인의 제단 꽃 장식을 볼 수 있지만, 이윤희 대표가 장례 화훼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장례 화훼 문화가 정립돼 있지 않았다. 제단에 꽃을 일렬로 배열하는 게 다였다.
 

 

“일반 화훼 장식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덕에 여러 기술과 학문을 보유한 기능인이 많았지만, 장례 화훼 분야는 모든 것이 부족했어요.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을 접목하고자 했죠. 고인의 생애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표현한 이미지 제단입니다. 순국한 소방공무원을 위해서는 붉은 꽃으로 불꽃 모양의 제단을, 산에 잠든 산악인을 위해서는 산 모양의 제단을 제작하며 그들의 인생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장례식장의 특성을 고려해, 빠르게 설치하고 철거할 수 있는 ‘퍼즐식 꽃 장식’도 그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제단을 제시하며, 기존에 없던 장례 화훼 분야를 개척한 그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장례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굳은 각오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이어갔다. 22개에 달하는 특허와 디자인 등록, 11권의 장례 화훼에 관한 저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려는 데는,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후배들 때문이다.
 

 

“2018년 ‘장례화훼 기능경기대회’를 주관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장례 화훼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훌륭한 기술을 지닌 후배들을 발굴해 그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고 싶었어요. 특허를 등록하고, 논문을 제출하며,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장례 화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후배들이 저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라며, 혹여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꼭 이겨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모든 경험이 배움이 될 거예요.”
 

 

장례 화훼 분야를 개척하고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이론화한 그는 그 성과를 인정받으며 2020년 ‘울산시 명장’,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2023년 ‘대한민국 우수 숙련인’과 2024년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장례 화훼 분야를 넘어, 다양한 공간에 조경 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제단의 꽃을 장식하는 이들은 장례꽃연출가, 엔딩(Ending) 플로리스트, 퓨너럴(Funeral) 플로리스트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그 중에서도 왜인지 그 어떤 단어보다 엔딩 플로리스트라는 표현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한 사람의 삶이 지는 순간, 다른 한 편에서 그 마무리를 위해 아름드리 꽃을 피우는 이가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를 향해 마음 깊이 ‘명장’이라 불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업데이트 2025-01-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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