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년 창호 외길 인생을 걷다
    대한민국 창호 명장 이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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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한 명장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3년,

대구의 유명한 창호 장인백상운 선생을 만나면서 창호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우연한 계기로 걷기 시작한 길이지만, 뛰어난 솜씨로 ‘최초’, ‘최고’만의 수식어를 거머쥐었던 그의 외길 인생을 들어본다.
 

 

창호는 나의 모든 것

이종한 명장이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당신에게 창호는 어떤 존재입니까?”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한결같다.
 

“창호는 나의 인생, 나의 운명입니다.”
 

 

이종한 명장이 처음부터 창호 명장을 꿈꾼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3년, 그는 우연히 백상운 선생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됐다.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던 형편 탓에 자녀들을 오롯이 키우기 힘들었던 부모님은 ‘먹여주고 재워주며 일까지 가르쳐준다’는 말에 기꺼이 그를 보냈다.

 

물론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익숙지 않은 것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끈기가 있었다. 다른 동기들이 모두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동안에도 그는 스승에게 꾸준히 창호 기술을 배우고 실력을 키워갔다.
 

 

“처음부터 창호에 매력을 느낀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백상운 선생님에게서 창호를 만났고, 진득하게 배우며 마침 재능이 맞아떨어진 거죠.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니 창호는 어느덧 제 인생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운명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백상운 선생에게 전통 창호와 사찰문 제작 기법 등을 익히던 이종한 명장은 1968년 스승의 권유로 대구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창호 분야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내로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10대의 나이임에도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에는 우리나라 대표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8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했다. 전 세계 기능인들이 한데 모인 이 대회에서 그는 창호 직종 특상을 수상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그 시절 브뤼셀에 가기 위해서는 몇 차례나 비행기를 경유해야 했습니다. 비행시간만 24시간이 넘었으니 지금 돌이켜봐도 참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겨우 도착한 뒤에도 영어를 몰라 경기 준비에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특상을 수상했던 건 당시 저에게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약관의 나이 이전에 큰 성과를 이룬 이종한 명장. 이후 해인사 장경판전, 용문사 대장전, 성혈사 나한전 등 전국의 주요 문화재 창호 복원 작업에 참여하며 창호 장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이종한 명장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직업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 그의 인생은 오직 창호뿐이었다. 그는 전통 창호의 매력을 역사성과 전통 방식에서 찾았다. 창호란, 단순히 문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적인 도안을 바탕으로 한, 문화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전통 창호의 가치를 이어가면서도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들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 요즘은 신기술을 접목해 작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일상적인 작업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기계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문화재 수리 같은 전통 창호를 다뤄야 할 때는 철저하게 전통 방식을 따릅니다. 대패질 하나도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을 모색하는 명장에게도 고민은 있다. 전통 창호를 이어갈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통 창호는 배우기 어렵고, 경제적인 보상이 크지 않아 젊은이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창호를 배우러 와도, 이걸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금세 떠납니다. 더 많은 지원과 인식 개선이 절실합니다. 전통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그 기술은 사라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제 뒤를 이어 더 많은 창호 장인이 명장으로 인정받고 이 아름다운 전통 기술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이종한 명장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창호 기술을 전수하며, 매년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어 제자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 창호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전통 창호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큰 울림을 남기며 이어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업데이트 2024-12-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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