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피장 박성규 숙련기술전수자는 우연히 박물관에서 본 칠피공예의 아름다움에 반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걸었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가죽을 길들이기 위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반복했던 시간들.
그러나 거듭된 인고의 노력은 그를 국내 유일 칠피장으로 만들었다.
소와 양, 거북이와 상어가 예술 작품이 되기까지
“칠피공예는 가죽에 옻칠을 해서 만드는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나전칠기 작업을 했었어요. 그러다 박물관에서 옛 조상이 만들어 놓은 칠피공예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과연 저 작품의 재료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자주 가서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했죠. 그러다가 그 작품의 재료가 가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뒤로 소와 양, 상어와 거북이 등 다양한 가죽을 다루면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저만의 칠피공예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죠.”
이때부터 전통가마를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문헌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림 한 조각에서 실마리를 찾고, 학자들의 조언을 길잡이로 삼았다. 실체를 보지 못한 가마를 재현했을 때의 뿌듯함은 무엇보다 큰 동력이 되었다. 화성행궁 유물 재현, 단종의 진전(어진을 봉안하는 처소)과 신연(어진을 봉안할 때 사용하는 가마) 제작, 경기전 가마 복원 등 손끝으로 숱한 역사를 되살렸다. 능행차에 사용된 혜경궁 홍씨의 가마는 형태부터 문양까지 기록이 상세히 남아있어 완벽한 고증을 기반으로 만든 역작으로 꼽힌다.
칠피공예란 가죽으로 옷장이나 서류함 보석함 등을 만드는 공예를 말한다. 칠피공예의 뼈대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뼈대 위에 가죽을 붙이고, 가죽에 옻칠을 하여 건조한다. 나전을 오리거나 거북이 가죽, 금속으로 문양을 만들어 새기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겉으로 보면 나전칠기와 거의 유사한 작업과정을 거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가죽을 다루는 세밀한 공정 작업이 있다.
어떻게 옻칠을 하는가에 따라 가죽의 질감이 그대로 보존되기도, 제멋대로 망가져 버리기도 하는 가죽의 특성 탓에 가죽의 종류와 결에 맞게 세심히 옻칠을 해주어야 한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가죽을 다뤄내는 기술이야 말로 박성규 전수자가 가지고 있는 또렷한 전문성이다.
시간을 덧대고 생명을 칠하고
1992년도 전승 공예대전에서 상을 받으면서 칠피장 박성규는 세상에 나왔다. 나전칠기 작품에 가죽 띠를 둘렀던 옛 유물을 전체적으로 가죽으로 재현해 낸 것이 큰 상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칠피공예에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까다로운 가죽의 특성 탓에 그들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로 이어졌다. 그리고 칠피장 박성규의 재능은 더욱 견고해졌다. 유물을 재현하고, 옛 유물을 복원하는 일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점차 늘어났다.
“거북이 가죽을 대모라고 합니다. 대모는 가죽이 강해요. 붙일 때는 괜찮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금세 어그러져요. 소나 양가죽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비싼 값에 재료를 사와도 비 맞고 눈 몰아치면 곰팡이가 피고, 결이 망가져버려요. 칠피공예를 하며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가죽이 망가지지 않고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어요. 하루에 14시간씩 매진하며 오랜 세월을 싸웠습니다. 그렇게 쌓은 기술로 지금은 문화재를 재현하는 일과 보존하는 일에도 보탬이 되고 있죠.”
현재는 우리의 유물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 작업에 힘쓰고 있다는 박성규 전수자. 시간의 힘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는 유물들을 일일이 붙이고, 덧칠하며 수명을 불어넣는다.
박물관에 가보면 손만 대면 부서질 것 같은 문화재들이 많이 있어요. 보존 작업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훼손될 작품들입니다. 더 이상 망가지지 않고 후손들까지 우리의 유물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보존 작업을 해야 해요. 내가 후손들에게 남겨줄 가치라고 생각하며 사명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칠피공예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 또한 칠피장 박성규에게 남은 과제다.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찻잔, 컵받침, 주전자 등의 생활용품을 칠피공예로 만들고 있다. 스마트 공방에서 기계도 마련했다. 작품 생산을 기계화해서 단가를 낮춰볼 생각이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칠피공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일반인들은 아직도 칠피공예를 생소해해요. 칠피공예 작품들은 가격대도 비싸고, 볼 기회도 드물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칠피공예 작품들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대중들에게 칠피를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죠. 그러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 과제를 지금 해 나가고 있어요.”
작품이 정말 아름답다는 소리에 박성규 전수자가 환한 미소를 보인다. 오랜 시간 칠피장의 길을 걸어왔지만 자신의 작품을 알아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그는 또다시 자신의 작업장으로 들어선다. 거칠고 때묻은 손으로 가죽을 잡는다.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내 보이는 일. 40여 년 해온 일이지만 그에게 이토록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