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평생 불꽃과 전쟁하다
    용접 관련 국가기술자격 취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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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도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포기하고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기계과 입학 후 2학년 1학기에 전공 실습과목(용접, 선반, 밀링, 조립)을 앞둔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일어났다. 용접 부실에 따른 사고였다.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춘 용접엔지니어가 되고자 마음먹고, 진로를 용접분야로 변경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불꽃과의 전쟁을 시작하다

1995년, 공업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전기용접기능사 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첫 번째 필기시험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필기시험을 준비하여 2학년 1학기 두 번째 필기시험에서 순조롭게 합격했다. 방과 후 및 여름방학에 실습실에서 용접 시 발생하는 3,000도 이상의 온도와 싸우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습한 결과 1995년 10월 전기용접기능사 실기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두 번째 도전은 1996년 12월, 공업계 고등학교 의무검정인 수치제어선반기능사 자격증이었다. 강원도 공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처음으로 ‘2+1’ 체제라는 교육방식을 시행했다. 2년은 학교에서 배우고, 1년은 한 학기 앞서 산업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더 깊이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용접 관련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1997년 당시 전국에 용접 관련 학과는 세 곳 있었는데, 국립대학 중에서는 천안공업대학 용접기술과 現) 공주대학교에서 용접 관련 교육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취득한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으로 관련 학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2001년 8월, 세 번째 자격증인 용접산업기사 취득을 목표로 또다시 불꽃과의 전쟁을 했다. 용접산업기사는 전기용접기능사와는 달리 어려웠다. 특히, 4과목 중 재료 역학 과목이 제일 어려웠다. 합격을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한 결과 한 번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한 여름, 옷이 땀에 흠뻑 젖어 몇 번씩 옷을 갈아입으며 연습한 결과 좋은 성적으로 용접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노력의 결과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격증 취득으로 첫 직장생활을 하다

2001년 11월, 강원도 평창에 있는 리조트 시설관리 직무에 입사 지원하여 합격했다. 용접 관련 업무 비중이 크다고 하여 지원했지만, 실제 업무는 리조트에 있는 정수장 물 관리업무 및 스키장 슬로프 라인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2002년 2월 말, 기계 및 용접 관련 학과에 편·입학을 결심했다. 학비 및 생활비는 저축한 돈으로 사용했고, 주말 및 방학기간에는 매일 인력시장에 나가 용접 및 일용직으로 일하며, 학비 및 생활비를 마련하여 학교생활을 했다.
 

2003년 11월, 편·입학하여 학교생활 중 용접기사 자격증 취득 요건이 되어 네 번째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용접기사 필기시험은 쉽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 필기시험은 아쉽게 낙방했다. 두 번째 필기시험은 재료역학 과목에서 과락으로 떨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대학교 4학년 초에 용접기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실기시험은 평소 주말 및 방학기간에 틈틈이 연습한 결과, 큰 문제없이 한 번에 합격했다.
 

해외경험을 디딤돌로 특급기술자로 성장하다

2003년 12월, 본격적으로 취업을 위해 취업사이트 여러 곳에 이력서를 올렸다. 때마침 발전소 철골 배관설치 및 경상 정비를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심사 및 면접심사까지 순조롭게 합격한 계기는 용접자격증 덕분이다. 건설업체는 신규 공사 입찰 시 관련 자격증 소지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또 입찰 금액에 따라 건설기술인(특급, 고급, 중급, 초급)에 해당하는 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해는 신입사원으로 10명이 입사했고, 한창 전국 및 해외현장으로 발령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고민 끝에 “해외현장으로 지원하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플랜트 현장이었다. 한국에서 나이지리아 현장까지는 22시간이 소요되었다. 현장은 바다에서 석유를 뽑아 LNG Gas로 정제하기 위한 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그곳에서 플랜트 배관 용접 시공을 담당했다. 2004년 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해외 근무를 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이후 2007년 10월, 원주시에서 채용박람회를 한다는 소식에 무작정 이력서를 갖고 채용박람회에 갔다. 철강구조물 제작업체에서 용접 관련 품질담당자를 채용하고 있었다. 면접 시 당당하게 자격사항을 보였고, 최종으로 합격하여 입사했다. 2007년 10월, 사원으로 입사하여 2020년 현재 품질관리부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교 졸업 및 용접기사 자격증 취득으로, 현재 건설기술인협회에서 발행되는 경력증명서에는 특급기술자(품질관리, 용접)로 기재되어 있다. 또한, 자격증 및 특급기술자가 되면서 자격증 수당도 높아졌다.
 

새로운 꿈과 희망을 주었던 기능장

다섯 번째 자격증 취득은 2010년 10월이었다.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한번에 용접기능장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혼자 남아서 용접 불똥이 옷에 떨어지거나 살이 타들어가도 멈추지 않고, 노력한 결과 실기시험에 단번에 합격해 2010년, 제47회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사내용접사로 80명 정도 근무하고 있지만, 용접기능장을 취득한 사내 근로자는 없다. 처음 용접사 교육을 진행할 때는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이제는 현장에서 문제점을 묻기도 한다. 그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해주곤 한다.
 

여섯 번째 자격증 취득은 2016년 6월이었다. 제58회 배관기능장 취득을 목표로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두 시간을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처음에는 과년도 문제 위주로 공부한 결과 아쉽게도 필기시험에 탈락했다. 처음부터 다시 이론 및 과년도 문제를 병행하여 공부한 결과 두 번째 제59회 배관기능장 필기시험에서는 고득점으로 합격했고, 주말 및 퇴근 후 적산 및 실기 연습을 반복하여 배관기능장을 취득했다.

기능장 취득 후에는 예전부터 계획해오던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능력개발원 시행 2019년도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주말 1차 교직훈련과정을 이수하며, 용접 2급, 건축설비설계시공 2급, 플랜트 2급 훈련교사 자격증을 발급받았다. 자격증 취득으로 2019년도 강원도 지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19년도 근로자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등의 쾌거를 이루었다.
 

현재 용접기능사, 용접산업기사, 용접기사,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고, 용접기술사를 목표로 도전 중이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은 자격증의 힘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자격증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 2021년도 국가자격취득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업데이트 2022-05-0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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