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대학교 4년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의 실루엣이 선명해지면서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담은 노트를 만들어나가고, 해당 디자이너들의 발자취를 좇아 그 이면에 어떠한 노력이 숨겨져 있는지 파악했다.
글. 김두원(장려상, 네덜란드)
* 2020년도 성공 해외취업 수기를 전합니다. 지면 관계상 실제 수기 내용을 조금 각색하여 전합니다
느리지만 더디지는 않은 출발
대학교 3학년에 첫 인턴을 찾아 나섰다. 인턴십을 구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22살의 학생이 어떻게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디자이너들로 꾸려진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여러 차례의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치면서 회사 측에서는 지원자가 타이틀을 위한 인턴십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열정과 직업정신을 지녔는지 유심히 본다고 느꼈다. 면접 전에, 면접관 프로필, 인원수를 파악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갔다. 이후, 당시 오갔던 흥미로운 대화나 새롭게 알게 된 점을 메모하는 습관을 길렀다.
5개월의 인턴 생활 동안 누구보다 먼저 출근했고 시니어 디자이너의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돕도록 그날 주어진 프로젝트 및 업무를 미리 파악했다. 개인마다 역량과 재능이 다르기에, 출발이 다를 수는 있으나 노력은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대학을 졸업했고, 인턴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게 되어 동기들 중 제일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 인턴십 종료 후에도 꾸준히 이어온 관계 덕분이다. 해외취업은 특히, 경영진 및 직원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통한 지원자의 관심과 열정이 중요하다.
취업 후에는 궂은 날씨와 장대비를 뚫고 현장답사 및 사전 리서치 단계를 거쳐 하이네켄 박물관, 스키폴 공항, 암스테르담 중앙역 등을 발로 누비며 프로젝트를 하나 하나 완성해나갔다. 돌이켜보면 무형의 콘텐츠를 유형의 결과물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도 보람찬 과정이었다. 낯선 땅에서 비록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내가 디자인한 박물관 안내도, 공항 안내판과 암스테르담 중앙역 안내 표지판 재배치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편리하게 해주었다면, 내가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것이 헛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꿈과 비전의 목표화
네덜란드는 현지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zoekjaar’라는 워킹비자를 발급해 주고 있다. 1년의 기간 동안 졸업생들이 편히 구직활동을 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비자이다. 해당 기간을 활용해 체류 기간 걱정 없이 1년 동안 구직활동이 가능하다.
나는 네덜란드 미대 진학 이후 현지에서의 구직활동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았지만, 한국에서부터 구직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면접관에게 관심기업에 비자 발급 지원 프로세스가 있는지 먼저 문의하는 것이 좋다. 또, 관심기업 면접에 앞서, 지원자로서 자신의 역량,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팀 플레이어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해외취업을 통해 깨달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는 모두 초보자로 시작하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직장 동료들의 업무 태도나 프로세스를 평소에 잘 파악해두고 필요한 경우 스스럼없이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예술 분야의 경우 특히나 개개인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사고가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둘째, 루틴의 습관화이다. 매일 새벽 4시~5시 사이 기상, 5시 20분에 가까운 헬스장을 찾아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내가 거주하는 항구 도시 로테르담부터 직장이 있는 암스테르담까지 2시간 거리였음에도 매일 체력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항상 회사에 가장 먼저 도착했기에 근면 성실하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셋째, 명확하지 않은 업무지시를 받았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지시자를 찾아가고, 때때로 버거운 업무에 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매사에 겸손하되, 나보다 잘하는 이가 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긴여정의 쉼표, 그리고 꿈의 되새김
타국에서 끊임없는 경쟁 끝에 꿈꿔왔던 분야에서의 도약을 시작할 때 즈음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디자인 회사의 주 고객이 전 세계의 공항, 박물관, 백화점 등의 다중이용시설이었기에,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에서는 급기야 뉴욕 지사 인력을 축소하고, 암스테르담 본사에서는 경영진 및 주요 시니어 디자인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감축시켰다. 나 역시 입사 동료인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국적의 주니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짐을 싸고 돌아와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 땅을 떠나는 마지막을 배웅해 준 것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곳곳의 스크린 속 나의 인포그래픽 디자인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온 나에게 재충전과 도약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기에 기대되는 미래
휴식기 이후 무엇을 하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병역의 의무를 먼저 이행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를 떠나던 날,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탑승하기 전에 대학 동기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친구와 손을 맞잡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두원, 조심히 잘 다녀와. 우리 몇 년 뒤 다시 만나서 꼭 우리의 이름을 건 디자인 회사를 만들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준비 잘 하고 있어.”
코로나19 발생과 같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나의 해외취업 과정 역시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졌고, 미래의 나도 지금과 다를 것이다. 미래에는 어느 곳에서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꿈이 있기에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종식 후에 도래할 대한민국 모든 청년의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