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된 한반도의 최고 기술 명장을 꿈꾸며
    국가기술자격수기 대상 인천환경공단 최한일(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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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삶
저는 탈북민입니다. 남한으로 오기 전 북한에서 10년간 군 복무를 했습니다. 만기 군 복무를 마쳤을 때, 사회생활의 기본권은 고사하고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도 없었습니다. 17살의 나이에 군에 가서 10년이라는 세월을 국가를 위해 귀중한 청춘을 희생했지만 돌아온 것은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삶뿐이었습니다.

북한사회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을 느꼈으며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중국으로 탈북을 했습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 숨어 지내다가 한국식품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남한에 대해 알게 되었고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여기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언어, 문화 등 다른 것이 너무나 많은 대한민국에서 일용직부터 시작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인력사무소로 출근해서 지정해주는 현장으로 갔고, 여름의 햇볕도, 겨울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을 끝마치면 온몸의 뼈마디가 부러진 것 같이 쑤시고 아팠지만, 손에 쥔 일당을 보면서 기뻤고 대한민국에 살면서 돈을 버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끝없는 배움
하지만 마냥 이 일을 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이듬해 30세의 나이로 한국폴리텍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부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교수님 강의가 도통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물러설 곳은 없다’고 생각했고, 모르는 것은 짚고 넘어가고 열 번, 스무 번 교과서를 반복해 읽으면서 매일 밤 12시 이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부를 한 덕에 기계설계산업기사,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 기계가공산업기사, 지게차운전기능사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격을 토대로 졸업 후, 60:1의 경쟁률을 뚫고 환경 관련 공단에 기술 9급으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 32개월 만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년 후, 에너지관리기사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지금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회사에 다니면서 인하대학교 공학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포기 없는 도전
지난해 2019년에는 국가기술자격의 최고의 능력을 검증하는 ‘기능장’ 자격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었습니다. 연초부터 회사를 마치고 도서관 마감 시간까지 책을 보고 또 보며 공부했고, 기계공작과 재료, 도면해석 및 시공, 용접, 적산 배관 응용기술 등 수많은 기술과 기능을 익히는 데 시간과 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일 년에 두 번 시행되는 기능장 시험에 모두 합격하여 제65회 에너지관리기능장, 제66회 배관기능장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탈북민 최초의 국가기술 기능장 자격취득자로 탈북민들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 지원재단)에서 발행하는 일간 잡지에 실렸고, 신문기사에도 소개됐습니다.

기술로 꿈꾸는 통일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 명장이 되는 것을 꿈꿉니다. 탈북민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에 잘 정착하여 살겠지만, 남북이 통일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경제 선진국 11위인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은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어 더욱더 경쟁력을 높이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전문성을 지닌 최고의 명장이 되어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이 북한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에 저의 기술력을 보태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배우고 노력할 것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업데이트 2020-01-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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