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격증은 나의 영원한 버팀목
    황 우 석 (한국경제진흥원) 2018 국가기술자격 취득자 수기 공모전 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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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25둥이다. 6·25가 난 9일 후 충남 공주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1학년 수료를 며칠 앞두고 스스로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낯선 부산으로 와서 난생 처음 돈을 벌기 위해 ○○제강에 취업했다. 처음 주어진 임무는 압연기 롤러에서 방금 통과한 시뻘건 철근을 집계로 끌어다가 제 위치에 옮겨놓는 막노동이었다.

장시간 근무에 야간작업, 그것도 고열과 싸우는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코피가 연신 나더니 급기야 작업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반장님이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수소문 끝에 새로 생기는 기술부서로 옮겨 주시면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 후 우연히 고향 형님뻘 되는 분을 만나게 됐고, 그 분 도움으로 기술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72년 취득한 용접기능사(전기용접) 자격증이 진로를 바꿔주었다. 낮은 학력 때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군대를 용접기능사 자격증 덕분에 육군 기술행정병 현역으로 지원해 복무하게 됐다. 전역 후 ○○철강에 다시 입사했고, 그 후 회사를 옮기게 됐다. 그러나 IMF 때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매일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 부산기능대학의 기능장 과정 야간반 모집 현수막을 보게 됐다. 담당 교수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자리부터 구하는 게 순서가 아니냐고 말씀해 주셨지만 배우고 싶은 나의 욕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입학한 지 얼마 후 다행스럽게 일자리도 구하게 됐고, 주경야독으로 기능장 과정을 무사히 수료할 수 있었다. 그해 기계가공기능장 시험에 당당히 합격, 우리나라 최고의 기능인 반열에 오르게 됐다.
 

 

기계가공기능장이 되니 이제 좀 더 높은 곳이 보였다. 기술지도사(기계분야) 2차시험 준비를 시작해 1년 4개월 동안 하루에 5시간 이상 자본 적 없이 두껍고 어려운 기계공학책과 씨름을 했다. 시험을 보고 2002년 7월 24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 하단부에 합격자 명단이 발표됐는데, 그곳에 나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이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졸업을 거쳐 부산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과정 야간반에 지원, 2008년 공학석사가 됐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직업전문학교에서 용접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하러 갔으나 특수용접 자격증이나 용접기능장 자격증이 있어야만 했다. 이에 용접기능장 시험에 도전해 2012년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직업전문학교에 취업해 후배들을 가르치는 영광도 누려보았다.

뒤돌아보면 자격증과 공부는 나의 끊임없는 도전과 생활이었다. 어렵게 하나하나 취득한 자격증은 노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확실한 버팀목이 됐다.

“배우고 닦는 길에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으며, 뜨거운 열정이 있으면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學硏行道 無時無所 必有熱情 必得成事).”

이제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느끼고 터득한 지혜다. 오늘에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참되고 성실하게 흘린 땀방울은 후일 반드시 값진 금방울이 되어 온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모든 기능인과 기술인들에게 한없는 격려의 말을 보내고 싶다.

 

업데이트 2019-03-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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