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북 정읍의 한 시골 마을에서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생후 6개월 만에 뇌수막염이라는 병을 얻었다. 병원에서조차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3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한쪽 눈 실명이라는 장애를 안게 됐다.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해 3학년 2학기 때 구로공단에 있는 ‘프라코’라는 사출성형회사로 실습을 나갔다. 프라코는 졸업 후 나의 첫 직장이 됐다. 유난히 나를 챙겨주시던 직원분이 나를 부르시더니 “공부해라. 무조건 공부해라”라고 하셨다. 나는 “지금이 생활도 만족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분은 “20년 후 네 모습을 상상해봤니?”라고 되물으셨다. 불현 듯 ‘나의 미래,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스쳤고, 몇 달 고민 끝에 무작정 집으로 내려왔다. ‘대학은 못 가더라도 자격증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내가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24살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운전직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힘들게 면허증을 따 낮에는 운전을 하고 저녁에는 자격증 공부를 했다. 1년여 간 노력 끝에 1999년 보일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바로 취업이 될 것이란 희망을 안고 운전직을 그만 두었지만 백수 생활이 한 달 남짓 이어졌다.
그 무렵 아내가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둘째 분윳값이 없어요.” 다시 운전을 하기로 결정하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중 일성콘도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내가 사회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뻤다. 자격증 덕분에 보일러 분야에 입문하게 됐지만 국가기술자격증에 대한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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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간절히 원하고,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꿈은 이뤄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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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근무를 하고 쉬는 날이면 왕복 4시간 거리인 익산 폴리텍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해서 위험물·공조냉동·가스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KBS ‘아침마당’ 프로그램에서 출연제의를 받아 자격증 덕분에 방송에 나가는 영광도 덤으로 누렸다. 어렵고 힘들어 때론 포기하려할 때마다 옆에서 믿고 응원해 준 아내가 없었더라면 자격증 취득은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었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막연히 공무원이라는 꿈을 꾸게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유행하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내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일간지에 기술직 공무원 특채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1차 합격기준은 자격증 다수 보유자였기 때문에 손쉽게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2차 면접에서는 실무 내용을 많이 출제했는데 막힘도 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렇게 나는 2003년 31살에 농촌진흥청 공무원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간절히 원하고,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꿈은 이뤄진다고. 기계설비를 운영하자면 자동제어(전기)는 필수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기기능사에 도전, 합격했다.
기계분야로 첫 발을 들였지만 유독 관심이 많은 분야는 전기였다. 전기기능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2년 동안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고 공부한 결과, 다섯 번째 전기기능장 실기시험에서 드디어 합격했다. 이어 에너지관리기능장, 배관기능장을 취득해 드디어 트리플 기능장의 꿈을 이루었다. 직업훈련교사(산업설비2급, 전기2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내가 수 년 동안 현장에서 접한 노하우와 좌절과 성취를 후배들과 나눌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