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통행이 뜸하기로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순천완주 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에서 남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화엄사로 향하는 요금소 표시를 만나게 된다.
잊지 말고 그 표시를 따라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신지리, 연파리, 구만리로 이어지는 평야가 나타나는데, 모두 지리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소중한 삶의 터전들이다.
그리고 구례 예술인마을도 바로 이곳에 조성되었다.
글·사진_정환정 여행작가
전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들의 마을
앞서 이야기한 신지리와 연파리, 구만리 등은 모두 광의면에 속한 곳들. 광의면은 저 높이 고고단까지 품고 있는, 품이 넉넉한 곳이다. 그런 곳에 지난 2008년부터 한두 사람의 예술인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삶의 거처뿐만 아니라 창작 공간도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이, 그리고 작품이 전보다 더 좋아졌기 때문인지 10년이 흐른 지금은 어느덧 30가구가 모여 사는 어엿한 마을이 되었다.
물론 이 과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달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작가들은 나름의 활동 반경 등이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을 모두 뒤로 한 채 지리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례군에서는 작가들의 그런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고, 덕분에 산으로 향하는 초입에 잘 포장된 진입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및 통신 시설 등이 마련되었다. 한적한 농촌에 작지만 뚜렷한 변화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반 시설 및 환경의 변화를 보고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런 예술인마을의 초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차장이다. 위로 경사지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저마다 다른 모습의 주택들이 이어져 있는 마을이지만, 도로변에 차가 보이지 않는다. 외부인이 방문할 때도 차는 반드시 지정된 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불편하다고 하면 불편할 과정이, 이곳에서는 오히려 반갑다.
평온함 너머의
풍경들 사이로
길은 언덕배기를 따라 반원 형태로 이어져 있다. 가장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틈엔가 마을의 외곽을 전부 훑어볼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집들이 자랑하는 저마다의 개성은,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마치 파주의 해이리가 처음 조성되던 당시의 모습과도 비슷한데, 대부분 2층으로 지어진 주택들은 지리산을 등지로 너른 평야를 향하고 있어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평온하다.
그런 집들 사이를 걷는 건, 의외로 조심스럽다. 토요일이면 오픈 스튜디오 행사로 외부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부담감이 한결 덜하지만, 아무 날도 아닌 평일에는 평범한 마을들처럼 온통 고요하기 때문이다. 과장된 말이 아니라 정말 고요함 그 자체다.
어쩌면 마을에서 움직이는 건 혼자 혹은 나와 동행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박하지는 않다. 만약 그러했다면 바깥에서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정원을 가꾸지도 않았을 것이고 담장 밖으로 흘러넘치는 꽃을 키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어 있지만, 집 바깥의 사람을 향한 마음 씀씀이는 집마다 활짝 열린 마당처럼 여유롭다.
그리고 그런 집들보다 더 넉넉한 것은 바로 지리산인데, 마을이 지리산 둘레길의 여정 중에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잠시나마 지리산의 품에 안길 수도 있다. 혹시 복장이나 신발 때문에 오솔길이 부담스럽다면, 조각가들이 많이 사는 옆 마을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선택해도 좋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짙게 드리워진 나무들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도 좋거니와, 길의 끝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예술인 마을의 모습 역시 처음 만난 그곳 못지않게 아름다우니까.
구례 예술인 마을에 대한 정보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guryeartist 혹은 페이스북에서 ‘구례예술인마을 토요 오픈스튜디오’로 검색)에서 사전에 확인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해보자. 체험을 원한다면 홈페이지(booking.naver.com/booking/5/bizes/110260?area=bns 혹은 네이버에서 ‘구례예술인마을 오픈스튜디오’로 검색)를 찾아서 도자기 만들기와 판화 찍기 등의 체험을 예약할 수 있으니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자가용으로 찾아갈 때는 내비게이션에 ‘전남 구례군 광의면 예술인길 38’을 입력하면 된다.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구례와 구만리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해 당동 정류장에서 하차해도 마을에 이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