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회
    글_채영수(권익위 청렴전문강사, 전 포스코ict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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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을 따르는 경우
구성원 간의 믿음을 지키는 것
 

서울을 조금 벗어난 외곽의 지방도로를 운전하는 일이 자주 있다. 편도 1차선의 외길인데,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차 왕래가 적어 빨간불 신호등을 무시하는 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구간에 나오는 차가 잘 보이지 않는 지점이 있어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앞차를 보면 내심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길 어귀에 거울이 있어서 주의하면 차량 통행 여부를 알 수 있지만, 혹시 급한 마음에 좌회전 신호등만 보고 나오는 차가 있을까 조바심이 난다.

도로교통규칙은 통행하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면 직진하고 빨간불에는 진행을 멈추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고 빨간불에 그냥 지나가면, 당연히 멈출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규칙을 지키는 일은 때에 따라 불필요하거나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떠한 성격의 것이든 규칙은 일정한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규칙이나규제는 꼭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규칙, 규제는 반드시 준수하는 것이 공동체 생활의 기본이다. 앞에서 말한 좌회전 신호등만 보고 나오는 차의 운전자는 다른 모든 운전자도 교통규칙을 준수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행동하게 된다. 한 사회의 안전과 질서 정도는 이와 같은 구성원 간 신뢰 관계의 총합과 같다고 생각한다.

 


작은 실천이 신뢰하는 사회를 만든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17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를 신뢰할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함’, ‘작은 약속을 잘지킴’, ‘스스로 법이나 규칙을 잘 지킴’, ‘상황이 변해도 일관성이 있음’ 등을 꼽았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가족을 제외하고 직장, 지연, 학연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낮게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2.5%에 불과하였으며, 정부, 다른 세대, 미디어,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대한 믿음이 낮아 대한민국은 저신뢰사회임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람은 단 3.1%밖에 안 되었고,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도 26.8%에 불과하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경제적 현실을 검토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가진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영국 레가툼 연구소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번영지수는 9가지 지표를 종합하여 살기 좋은 나라의 순위를 매기는데, 2017년 우리나라의 종합순위는 조사 대상 149개국에서 36위였다. 개별지표 중 ‘사회적 자본’이 93위로 종합순위를 끌어내린 탓이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은 점차적으로 바람직한 경험들을 쌓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한다. ‘규칙 지키기’, ‘거짓말 안 하기’와 같은 사회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 축적되어 신뢰가 쌓이고, 오랜 시간 좋은 경험을 거쳐 사회적 신뢰 수준이 높아진다. 신뢰 관계의 형성에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사람은 대한사람의 말을 믿고, 대한사람은 대한사람의 글을 믿는 날에야, 대한사람은 대한사람의 얼굴을 반가와 하고, 대한사람은 대한사람으로 더불어 합동하기를 즐거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업데이트 2018-07-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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