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어디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편견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온다.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진 용접 현장 한가운데 선 여성이라면 그 순간이 더 잦았을 터. 그럼에도 박은혜 차장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 세월이 무려 20년이 넘었다. 너무 지쳐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수백 번도 넘지만, 그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최초’라는 단어. 대한민국 여성 1호 용접기능장을 넘어 2015년도 금녀의 벽을 깨고 여성 최초로 재료분야 산업현장 교수가 됐으며, 지난해에는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된 인물. 한양이엔지㈜ 박은혜 차장의 하루를 만나본다.
AM 9:00
전체 업무를 파악하는 것부터, 오늘도 힘차게 시작
남들처럼 해서 남들이 거머쥐지 못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보고, 익히고, 치열하게 현실과 맞닥뜨리는 과정을 쌓아 올렸기에 가능했을 터. 어느덧 시간이 텅 비어버리면 불안할 정도로 그에게는 일에 몰두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인이 박였다.
그래서 하루의 출발도 남들보다 이르다. 아침 7시 즈음이면 사무실에 도착, 머릿속에 할 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업무 전반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관리자이므로 아침 회의에 필히 참석하고,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놓치지 않는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 길이기에 녹록지는 않지만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어 이 또한 즐겁다고 말한다.
AM 11:00
이해가 쉬운 교육 교재의 비결, 현장감 있는 사진
그의 하루는 사진으로 시작해 사진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틈나는 대로 현장을 방문해 인력양성 교육 자료로 사용할 작업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까닭이다. 교육생들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적 부분을 시각화 하는 작업인 셈. 용접 과정에서 수평자를 체크하는 방법이나 기계를 사용하는 방식 등을 직접 보여주는 게 그가 지향하는 강의 방식이다.
최대한 다양한 사례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촬영은 날마다 이루어진다. 현장 직원들과 허물없이 애로사항을 주고받는 것도 박은혜 차장의 역할. 그 역시 현장에서 실컷 땀 흘린 후 막걸리 한 잔으로 피로를 씻어내던 시절을 지나왔기에 ‘척하면 척’, 공감하는 능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PM 1:30
말로 하는 마이스터의 노하우를 문서로 깔끔하게
그가 근무하는 한양이엔지는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가 매우 활발한 기업이다. 자격증을 따고자 하는 직원에게 모든 지원을 해주는 것은 물론 새롭게 투입될 인력에게 총 6개월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가르친 후 현장에 투입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의 경우 도면, 장비 등 각 분야 최고의 마이스터가 일대일로 진행하는데, 박은혜 차장은 함께 참관해 이 과정을 문서로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맹목적으로 일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이론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단순히 지급된 자재로 용접을 하는 것과, 원리와 이유를 알고 작업에 임하는 것은 결과만 보더라도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파고들수록 알아야할 것들이 꼬리를 무니까.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박은혜 차장은 자신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M 3:00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여 뿌듯한 첫 해외 교육생
지금까지 수많은 교육생을 만났지만 지난해 3개월 동안 박은혜 차장이 교육을 전담했던 세 명의 베트남 친구들은 조금 더 특별하다. 한양이엔지의 첫 해외 교육생인 데다 그가 직접 베트남어를 공부해가며 수업을 한 터라 애착이 남다른 까닭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현장 사진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덕분에 짧은 기간임에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은 현장에서 2차 교육을 진행하는 중.
교육생들은 4월경 베트남으로 돌아가 현장 반장급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그동안 함께 수업을 하고 한국문화를 경험하는 동안 정이 많이 들었기에, 요즘도 작업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혹은 쉬는 시간에 일부러 짬을 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PM 5:00
더욱 효율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 또 고민
예전에는 몰랐는데 알고 나니 드는 생각, ‘아니, 이렇게 쉬운 걸 그토록 어렵게 가르쳤다니!’이다. 그래서 박은혜 차장은 가능하면 쉽고, 빠르고, 효율적인 자신만의 강의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실제 용어의 간극을 좁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은 사진으로 한눈에 쏙쏙 들어오도록 정리하는 것이 기본. 한 마디로 이론과 실무가 동떨어지지 않는 강의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덕분에 사내 교육은 물론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사항을 바로잡고자 진행하는 숙련기술 지도에서도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의 행보는 앞으로도 꾸준하고 탄탄하게 이어질 터. 언젠가 명장이 될 날을 꿈꾸며, 그는 작금의 시간을 성실하게 쌓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