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沙器)를 운명으로 전통의 가치를 계승하다
    백산(白山) 김정옥 선생 - 제1대 대한민국명장(도자기공예 분야), 국가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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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절 수식 없이 넉넉하고 간결한 자태,
어떠한 흠도 허락지 않는 고귀한 그릇 하나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다.
가난하고 굴곡 있는 삶도, 그의 사기(沙器)를 보아하면 다 이유가 있었겠노라 한다.
도자를 운명으로 60여 년째 사기장의 삶을 살아온 백산 김정옥 선생의 이야기다.
글_김민정 사진_차유진

 

백산 김정옥 선생 약력
1991년 제1대 대한민국 명장(도자기공예 분야) 선정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보유자 인정
2002년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보존협회 부이사장 역임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등
2005년 석탑산업훈장
2006년 제6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전통도예부문 대상
2016년 문화유산보호 보관 문화훈장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전수관 개관(경북 문경시)


도자의 정수(精髓)를 지키다
1991년 제1대 도자기공예 분야 대한민국 명장 선정, 1996년 국내 유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沙器匠) 기능보유자 인정. 조선시대 초기 분청사기 도요지로 이름난 문경에서 선생은 희수(77세)에도 여전히 발 물레질을 하고, 흙을 뭉쳐 만든 전통 망댕이 가마에서 14시간 초벌구이를 한 뒤 18시간 1300℃ 표준방식으로 재벌구이를 하는 전통방식을 따르고 있다.
가마 속의 나무와 불의 조화를 살피고 불을 지핀 후, 오랜 기다림 끝에 매끈하고 단단한 그릇을 탄생시킨다.

“문경은 그릇으로 유명하기보다는 우리 문화를 잘 지켜낸 지역이지요. 사방팔방으로 서양문화가 들어와도 작품의 깊이는 전통만 못하단 말이지요. 나는 선조들의 작품을 기준으로 그릇을 빚는데 그 안에는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문은 조선시대 사료인 하재일기(1891년~1911년 조선말 분원에서 만든 그릇을 궁궐에 납품하던 공인 하재 지규식이 쓴 일기, 현재 규장각에 보관)에도 기록된 조선 왕실 도자 혈통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 집안 대대로 270년을 이어 온 7대 계승자로서의 인고의 삶. 18살 무렵부터 발 물레질을 시작한 그는 아버지에게 전통도자 제작기법을 전수받고 지금에 이르렀다.

“6.25 전쟁 후에 사기그릇 찾는 사람이 점점 줄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가마를 지켰습니다. 시절이 너무나도 어려웠지만 아버지는 끝내 가마를 못 버렸지요. 당시 발 물레 성형부터 문양 새기기, 가마 불 넣기, 유약 제조하기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 우리 아버지 단 한 분밖에 없었어요. 한결 같은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가마를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어렴풋이 했지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태토(胎土) 선별작업과 발 물레질을 견뎠다. 그 시절, 그는 깊은 숲속 묻혀있는 이름 없는 흙처럼 살았다고 회상한다. 그 시절을 보내던 곳이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전통사기 가마시설 ‘문경 망댕이 사기요’는 현재 시도민속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돼 그의 고향인 관음리(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206-1)에 보존되어 있다.
 


예(藝)에는 요행이 없다
1991년, 선생은 오랜 시간 고민하여 선보인, 일본국보로 지정된 조선의 막사발, ‘정호다완’의 재현으로 일본으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도예 명장으로 우뚝 섰다. 조선백자의 분위기를 살린 그의 대표작 달 항아리를 두고는 발 물레의 달인이라는 평도 얻었다.

“내가 정호다완을 완벽히 재현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웃음) 당시 정호사발을 만든 장인은 ‘가히 신의 솜씨를 지녔다’고 할 만큼 훌륭합니다. 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줄곧 전통방식을 고수해왔고 문경 도자기만의 전통 가치를 유지하려 노력해서겠지요. 앞으로도 그 길을 잘 갈고 닦아달라는 국가의 당부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 허투루 평하지 않고 ‘예에는 요행이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선생. 그릇에 대해서만큼은 과장하지도 낮추어 이르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대부분은 아무 무늬가 없거나 붓질 몇 번으로 마무리를 짓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화공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밑그림을 그린다.

고향에서 영남요(嶺南窯)로 터를 옮긴 지 35년.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도예인들이 그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은 도예인이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는 백산(白山)이란 호에 담긴 백의민족의 굳건함과 산의 정직함처럼 간결한 답변을 내놓는다.

“재능을 못 타고 났으면 노력을 더 해라. 성실하게 해내라. 먼저 사람이 되어라. 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어. 여기서 얘기해도 저기서 까먹어버린다니까. (웃음)”

백산 선생에 이어 이제는 아들이, 그 아들의 아들이 대를 잇는다. 이미 9대째 전통의 맥을 잇는 집안이다. 빠르고 바삐 돌아가는 세상, 전통을 지키는 이들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도예인의 숨결이 그릇만큼 이나 아름답다.

 

업데이트 2018-02-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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