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로 빛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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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점에 가면 맛있는 음식보다 안 먹어본 음식을 고르는 아이였다.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골에서 어린 시
절을 보낸 내게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그 갈증은 계속됐고,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영화학과를 복수전공하며 영상제작을 배우던 내게 마침 그에 걸맞은 기회가
왔다. 바로 한국문화정보원의 ‘해외문화PD 사업’이었다.
 


나에게는 낯선 헝가리, 그들에게는 익숙한 한국해외문화PD의 주 업무는 해외 현지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취재하고 한류 확산을 위한 문화·기획영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사실 과제 영상을 제작하고 영어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내가 외국에서 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쟁쟁한 지원자들이 넘쳐나는 데다 영어실력도 그리 유창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선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무척 놀랐다. 다시금 되짚어 보니 합격할 수 있었던 건 면접장에서 어필했던 친화력과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친화력은 열린마음, 간절함은 꼭 하고 싶다는 마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일 테니 말이다. 오히려 합격 소식보다 더 놀라움을 준 것은 헝가리로 가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한국과 헝가리는 2013년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사실 헝가리에 대해서는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렇듯 낯설었지만 헝가리인들에게는 이미 한국이 익숙한 듯했다. 근무지였던 부다 지역에 위치한 한국문
화원은 한국 문화를 찾는 헝가리인들로 연일 북적이고 있었다. 매일 한식, 서예, 동양화 등의 문화 강좌가 열렸고, 특히 한국어 강좌는 인기가 많아서 등록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에서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며 한류를 더욱 실감했다. 가야금연주단 ‘민들레’의 단장 레나타는 엘테대학교에서 한국어학을 전공하며 한국 아이돌의 팬클럽 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배우기 시작한 가야금으로 언젠가 좋
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연주하고 싶다는 레나타.

문화콘텐츠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 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만든 콘텐츠를 외국의 다른 누군가가 볼 것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었기에, 이는 ‘세계의 확장’과도 같았다.

무지의 장막, 두려움 걷어내기
항상 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헝가리에 도착했을 때, 시리아 난민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뉴스보도를 위해 도착하자마자 급히 난민 취재에 나섰다. 카메라를 들고 부다페스트의 켈레티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역을 개방해 달라는 난민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나를 보고 신기한 듯 훑는 시선도, 내게 조롱 섞인 투로 뜻 모를 단어를 외치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보다는 ‘해내야 한다!’는 확신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경찰과 난민의 대치가 극으로 치달아 시야 확보조차 어려워지자 나는 두려움도 잊은 채 벽을 기어올랐다. 난민과 경찰의 대치 전경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난간을 붙ㅁ잡고 촬영하던 내게 한 헝가리 기자가 자신이 가져온 사다리를 쓰겠냐고 물었다. 나는 ‘꾀쐬뇜(고맙습니다)’을 연거푸 외치며 냉큼 사다리에 올라가 촬영을 시작했다. 덕분에 역 광장의 전경을 확실하게 담을 수 있었다.

2박 3일간 촬영하는 나를 보고 수고가 많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시민들도 있었다. 하나둘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자 서서히 두려움이 사라졌다. 용기 내어 나를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무릎을 구부려 눈높이를 낮추고 나를 의심스럽게 훑는 눈동자에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던 인터뷰이도, 카메라를 피하던 난민들도 차츰 경계를 풀어갔다. 그리고 이틀 후, 내가 찍은 영상이 KBS 9시 뉴스에 나왔다. 현장에서의 72시간이 3분 남짓한 뉴스에 담겨있는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었다. 현장의 생생함이 잘 담긴 좋은 현장르포라는 평을 받았을 때는 큰 보람도 느꼈다.

헝가리에서의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른 피부색, 국적, 언어. 나의 약점으로 여겨졌던 그것들은 오히려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는 열쇠가 되었다. 무지의 장막, 두려움을 걷어낸 헝가리에서 나는 꿈을 넓힐 수 있었다. 훗날, 내가 만든 콘텐츠로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을 더욱 빛낼 날을 꿈꾼다.

 

업데이트 2017-11-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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