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을 쌓아올리는 우직한 현장근로자 - 이수열 은탑산업훈장 수상자 /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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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열
은탑산업훈장 수상자 /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


산업훈장은 국가산업발전에 대한 공적이 큰 사람에게 수여된다. 이중 은탑산업훈장은 개인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올해 은탑산업훈장의 주인공인 이수열 씨는 남다른 학구열로 탄탄한 기술의 탑을 쌓아온 현장근로자이다. 찬란한 은빛 훈장을 가슴에 달기까지 그가 걸어온 인생길의 자취를 더듬어보았다.




이수열 두산중공업㈜ 기술수석차장 약력
2012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30년 근속상
2012년 창원시 지역사회공헌 표창(창원시장)
2012년 경상남도 최고장인
2013년 창원시 이달의 최고근로인
2013년 우수숙련기술자(고용노동부장관)
2015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2015년 경남기능경기대회 분과장, 심사장
2015년 경상남도 최고장인 선정 심사위원
2015년 숙련기술전수멘토링멘토(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
2016년 경남 고성 세계공룡엑스포 빛 축제 기술자문위원

현장기술자로서의 자긍심

이수열 씨는 1979년 창원기계공고 전기과 졸업 후 두산중공업㈜에 입사한 경력 36년차의 베테랑 기술인이다. 전기기능장 자격시험 심사위원, 일학습병행제 전문위원,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창원시 올해의 최고근로인 등 한 사람이 이룬 업적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해왔다. 기술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록을 세운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기술수석차장’이란 보직명으로 재직 중이다.

“기술수석차장은 현장책임자의 다른 말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차장’ 하면 일반 사무직부터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두산중공업㈜에서는 현장근로자들의 품위와 대외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기술수석차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요. 이번에 뜻 깊은 상을 받게 된 것도 이렇듯 기술인이 존중받는 현장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현장근로자들이 흘린 무수한 땀방울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실무 중심의 노하우가 집적되어 만들어진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015년 직업훈련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던 중 NCS 관련 교육 공고를 접했다. 생계수단으로 여겨 기술 전수를 꺼리는 과거의 풍조와 달리, 국가가 나서서 기술 관련 정보를 전 국민에게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 삶이 NCS나 다름없더라고요. NCS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수행하는 모든 직무를 나열해놓은 거잖아요. 전기 분야 안에도 수많은 세부 직무가 있는데, 저는 전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깊이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공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데서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죠.”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 1:1 멘토링, 중소기업기술지원, 재능나눔 봉사활동 등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스승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학생이기도 하다.


배움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이수열 씨를 대한민국 대표 현장기술인으로 만든 것은 남다른 학구열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그는 인문계인 밀성고 장학생 자격을 포기했다. 공구에 익숙지 않아 실기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보궐로 창원기계공고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첫 시험에서 당당히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마음 깊이 새겼다.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 100%를 이루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에요. 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배워나가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있어요.”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그는 1997년 전기기기 기능장, 2000년 전기공사 기능장을 취득했다. 최고의 숙련기술인임을 증명하는 자격증을 2개나 보유한 그에게 1999년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경남지역 지방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으로 나와달라는 요청이었다. 현장근로자에서 나아가 우수기술인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대외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예전부터 집안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포기하는 후학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돕겠다고 다짐하고 있던 그였다. 2012년 모교 밀양중학교의 공고 진학자에 대한 장학금 지원을 시작으로 점점 규모를 키워나가 지금의 ‘이수열장학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재단 등의 기관이 아닌 개인이 장학회를 설립해 지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위해 유명인사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잦단다. 그는 선행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그 인연과 더불어 사회 환원의 폭을 더욱더 넓혀가고 있다.


오늘의 안주는 내일의 도태

이수열 씨는 ‘현실에 대한 안주는 도태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자기개발에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더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함께하는 만큼 그의 지식욕은 더욱 빛난다. 발전설비에 들어가는 전기회로의 로직을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자비로 직접 하드웨어를 개발하거나 병원 MRI급 정밀도를 자랑하는 계측기를 구하는 등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다.

끊임없이 더 나은 내일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은 발전설비의 핵심인 제너레이터 로터(Generator Rotor) 관련 발전설비 원천기술자립에 혁혁히 기여했다. 더 이상 외국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1,000억 원에 달하는 이윤을 창출해냈다. 한국이 명실상부 기술수출국으로 거듭나는 중심에 그가 있었다.

“오만, 쿠웨이트 같은 중동국가의 공항에서 ‘코리안(Korean)’이라고 하면 입국심사를 위해 오래 줄 설 필요 없이 바로 통과돼요. 그럴 때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눈치 보며 기술을 배워야 하는 나라가 아닌, 당당한 기술종주국으로 발전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지죠.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감사하고 또 자랑스러워요.”

은탑산업훈장을 수여받기까지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함께했음을 잊지 않으며 깊은 감사를 전하는 이수열 씨.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는 새로운 앎에 대한 설렘을 안고 미래를 향해 우직하게 걸어갈 것이다. 그의 걸음에 대한민국 기술의 발전이 동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업데이트 2017-10-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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