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위틈마다 새긴 100년 전 기억을 따라 - 경기도 광명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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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색 바위가 크게 벌린 입으로 한 발 들어선 순간,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서늘한 기운이 먼저 느껴진다. 더위가 한풀 꺾인 틈으로 가벼운 숨을 훅 내쉬면, 깊이를 알 수 없이 이어지는 내부를 만날 수 있다. 더듬더듬 몇 걸음 내딛자, 깜깜하던 풍경이 서서히 눈에 익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동굴테마파크이자 2017~2018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광명동굴’이다.


역사를 품은 동굴

‘폐광의 기적’, 다녀가는 관광객 연간 140여만 명, 세계가 주목하는 동굴.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광명동굴을 표현하는 수식어이다. 하나만 얻기도 힘든 이름표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여행보다는 탐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다채로운 장소다.

동굴탐험의 첫 걸음은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부레벨에서 지하7레벨, 7.8km 갱도까지 광명동굴은 1912년 광산으로 설립된 당시의 규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굴이 기억하는 건 규모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광업권 침탈의 일환으로 광상조사기관이 설치되어 광산 발굴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발굴된 광물들은 일본으로 보내져 대동아 전쟁의 무기가 되었다고 알려진다. 역사적 사실에 수탈의 아픔은 더해진다.

그때 그 바위의 결을 따라 켜켜이 메워진 10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문득 오래된 낙서들이 눈에 띈다. 그 시절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남긴 이야기이다. 기록을 가만히 눈으로 읽어 내리다 보면 농민출신이지만 징용과 생계를 이유로 광산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광부들의 고단한 모습이, 단단한 돌덩이에다 대고서야 겨우 토로할 수 있었던마음이 벽 위로 겹쳐지는 환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까맣게 물든 그들의 땀이 피부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그 시절의 동굴에 서 있는기분이 든다.

해방 후 광산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1972년 폐광된 후 40여 년간 새우젓창고로 쓰이다가 2011년 지금의 광명동굴로 재탄생됐다. 광산에서 폐광으로, 새우젓창고로 이어져온 광명동굴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또 현재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문화를 더한 동굴

광명동굴에 담긴 이야기를 훑어봤다면 본격적으로 걸음에 속도를 더해야 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굴이 제법 길기 때문이다.

동굴 속으로 크게 한 발자국 들어가자 까맣던 시야가 문득 밝아진다. 고래, 해파리 등이 반짝이며 시선을 빼앗는 ‘빛의 공간’이다. LED조명과 뉴미디어 기법을 활용해 작품을 전시해둔 곳인데, 마치 금방이라도 어둠 사이를 유영해올 것 같은 생동감을 품고 있는 작품들이 빛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장 빛의 향연, ‘동굴 예술의 전당’의 ‘미디어파사드 쇼’가 이어진다.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자 다채롭게 흩뿌려지는 빛의 파편들이 머리 위로, 손바닥 위로 내려앉는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손으로 채 잡아보기도 전에 조명들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첨단기술과 예술이 만나 그리는 이 환상적인 풍경은 광명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빛의 세계를 통과한 후 걸음마다 물이 찰박이는 기분이 든다면, 1급 지하 암반수를 활용한 물의 공간 ‘아쿠아월드’에 도착했다는 신호이다. 동굴 내부에 설치된 수족관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 투명하게 흔들리는 물 사이를 부드럽게 헤엄치는 물 속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살랑이는 몸짓에 집중하노라면 문득 시원하게 쏟아지는 ‘황금폭포’가 정신을 일깨운다. 마지막 남은 더위 한 조각까지 말끔하게 씻겨주는 소리이다.

물 위를 건너면 은은한 빛이 반겨주는 ‘황금길’ 을 만나게 된다. 광산이었던 시절을 재현하려 40여 미터의 벽을 따라 황금으로 칠한 길이다.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이 건강에도 좋으니 일부러 걸음을 늦춰 걸으며 몸에 좋은 기운과 더불어 옛 기억을 음미하는 것도 추천한다.

동굴이 광산이었던 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구간, ‘동굴지하세계’도 잊지 말고 들르자. 광부와 광석이 오르내리던 길을 따라 지하1레벨로 내려가면 지하수로 잠겨 있던 신비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수꾼처럼 자리를 잡은 국내 최대의 용인 ‘동굴의 제왕’이 낮은 목소리로 동굴의 말을 대신 전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외에도 광명동굴에는 국내 와인을 총망라한 와인동굴을 비롯해 동굴 밖 산개발의 첫 시발점 ‘황금노두’, 채굴된 광석을 선별하던 ‘선광장’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공간들이 이어진다. 동굴을 따라 걸으며 한 토막도 놓치지 말고 귀 기울여 보자.


놀기 좋은 동굴

올 여름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주말에만 몇 만 명씩 다녀가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광명동굴 라스코전시관에서 열리는 ‘광명동굴 바비인형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장식미술박물관과 미국 마텔의 세계 최초 국제순회전시로, 세계 각국 총 740여 점의 바비들이 모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비의 탄생부터 패션, 의미까지 총망라하고 있어 하나의 문화가 된 바비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진행되며, 광명동굴과 함께 관람하는 통합권 발권도 가능하니 늦지 않게 다녀오자.

이와 함께 동굴의 온도를 한 뼘 더 낮추는 ‘공포체험관 좀비캐슬’도 여름을 맞아 새로이 문을 열었다. 동굴 지하세계에 자리한 좀비캐슬은 비밀의 성과 빼앗긴 황금을 찾는다는 스토리를 더해 지금까지의 공포체험과는 차별화를 뒀다. 동굴 특유의 어둡고 싸늘한 분위기와 리얼하게 분장한 좀비들의 열연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이 외에도 황금길 벽을 따라 소망을 거는 ‘황금패 달기’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위해 동굴 밖에 마련된 체험놀이터에서 ‘광물(보석)채광’, ‘황금채취’ 등의 체험을 진행하고 있으니, 동굴을 더 깊게 즐기고 싶다면 제대로 놀아보자.

여름을 맞아, 역사를 배경으로 문화와 즐길 거리를 색칠한 광명동굴. 이곳에서 지긋지긋한 더위는 밀어내고 오래 남을 ‘인생 여름’을 만들어 보자.

업데이트 2017-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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