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빛을 모아 함께 밝히는 앞날 - 2017 예비 사회적기업 선정루미르 대표 박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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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환
2017 예비 사회적기업 선정루미르 대표


우리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빛은 내 주변을 둘러싼 것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보이지 않던 것,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이게 하여 나를 바꾸고 더 나아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빛의 가치를 알고 어둠 속에 하나둘 빛을 심어나가고 있는 루미르의 박제환 대표. 그에게서 빛의 의미와 고마움을 배웠다.

어둠 속에서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

우리는 스위치 하나면 금세 환해지는 전원 조명의 불빛을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 세계 인구 중 13억 명 정도가 전기 없이 생활한다. 공모전 수상으로 가게 된 필리핀의 어느 마을에서 몸소 빛 부족 문제를 경험한 공대생. 그는 전원 없이 촛불만 가지고 더 밝은 빛을 낼 수는 없을지 고민했다. 촛불보다 60배 빛나는 LED 조명 루미르C를 개발한 루미르의 박제환 대표의 이야기다.

“초의 에너지 중 10%는 빛으로 쓰이지만 90%는 열로 버려져요. 이 열을 조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으면 괜찮겠다 싶었죠. 개발 과정에서 ‘제벡 효과’1)라는 개념을 알게 된 후, 형광등 LED가 깜빡거리지 않는 원리를 응용했어요. 촛불의 열에너지를 안정화시키는 데만 1년 정도가 걸렸죠.”

저개발국가의 빛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루미르C였지만, 실제로 해당 문제를 겪는 곳을 살펴보니 양초보다 등유 램프의 사용률이 훨씬 높았다. 오히려 루미르C는 양키 캔들 등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무드등으로 쓰기에 좋았다고. 이러한 현실에 맞춰 작동원리는 루미르C와 같지만 연료가 등유인 루미르K를 탄생시켰다. 문제는 등유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그을음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그을음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현지에서 답을 찾았어요. 주민들이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식용유로 불을 켜고 있더라고요. 기존 루미르K의 심지로는 점성이 있는 식용유가 잘 빨아들여지지 않아 심지를 더 굵게 만들었어요. 세심히 현장을 관찰하다보니 솔루션이 하나하나 보였죠.”

루미르는 지난 1월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를 통해 인도네시아 필드테스트를 진행해왔다. 꾸준한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7월 말 본격적인 루미르K의 양산에 들어갔다. 촛불에서 등유로, 등유에서 식용유로, 제품의 디자인도 열원도 다양해졌지만 목적은 매한가지,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고자 한 것이었다.

1) 제벡 효과(Seebeck effect) : 서로 다른 종류의 금속을 접합하여 전기 회로를 구성하고, 양쪽의 접속점에 온도차가 있으면 회로에 열기 전력이 발생하는 현상



소셜 미션과 함께 가는 수익 모델

‘사회적기업’으로 분류되지만 루미르가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지원하기 전까지 박제환 대표는 소셜 벤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찾아 나아가던 중 자연스레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에 이르렀을 뿐이다.

“아시아 대표로 글로벌 소셜 벤처 대회(GSVC : Global Social Venture Competition)에 나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벌 건데?’라고. 현재몇 명을 고용하고 있고, 업체 규모 대비 얼마나 수익을 내고 있는지, 특히 한 마을이라도 필드테스트를 거치긴 했는지 등 감성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인 것이 중요했어요.”

사회적기업의 핵심은 사회적 가치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꾸준히 실천해나갈 수 있는 ‘지속가능성’에 있다. 결과적으로 루미르의 그런 가능성이 킥 스타터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제품을 론칭하게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루미르를 포함한 소셜 벤처들은 스스로를 ‘소셜 미션(Social Mission)을 가진 영리 기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예비 사회적기업이 되면 신규 고용에 대한 자금 지원이 있어요. 소외계층 3명을 고용하면 인건비를 일부 보전해주는 거죠.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 그중 몇 퍼센트를 나라에서 부담함으로써 기업을 지원하는 거예요.”

루미르는 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빛을 밝히자 올라가는 세상의 온도

루미르C 스팟등은 등대를 형상화한 것으로 박제환 대표가 직접 디자인했다. 인도네시아의 정전이 캄캄한 바다라면 루미르의 조명이 그 어둠을 밝히는 지표가 되기를 바라는 철학을 담았다고. 어둠속에서도 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빛에는 또 다른 빛이 자연스레 동행한다.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루미르에 많은 이들이 훈훈한 온기를 보태고 있는 것.

“제품 개발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소재 부문에서는 세계 1위 기업인 일본의 페로텍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줬고, 기술 부문에서는 한국에너지연구원이 열 제어 관련 설계를 도와줬죠. 예전에는 시뮬레이션도 못한 채 제품을 개발했는데, 지금은 이런 지원 덕분에 좀 더 출력을 높이고 안정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됐어요.”

루미르K의 기능을 향상시킨 후속 제품도 열심히 구상 중이라는 박제환 대표. 필드테스트 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적극 반영하여 현지인들에게 더욱 유용한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여념이 없다. 루미르C에 이어 루미르S라는 새로운 선진국형 램프 역시 론칭 준비를 마쳤다. S는 재활용한 유리 소재로 만든 전원 조명으로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선보인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의 20%는 해비타트(Habitat)를 통해 루미르K를 보급하는 데 쓰일 예정이란다.

“선진국형 조명제품과 개발도상국형 무전원 램프 투 트랙 사업 구조를 안정화시켜나가는 게 우선의 목표에요. 탐스(TOMS)의 신발, 와비파커(Warby Parker)의 안경처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고 집을 꾸미기에도 좋은 인테리어 조명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여느 가정집의 침대 머리맡에 루미르의 조명이 하나씩 놓이는 날이 오면,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온기를 머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빛을 큰 빛으로 만들어 어둠을 밝히고, 빛에 드리운 그림자마저 아름답게 하는 루미르의 조명이 밝히는 불빛. 그것은 누구도 싸늘한 어둠속에 소외되지 않고 양지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를 비추는 등대와도 같았다.

업데이트 2017-08-0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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