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취업을 위해 필요하다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부지런히 지냈다. 그럼에도 졸업할 때 눈앞의 현실은 ‘불합격입니다’.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서 지난 십여 년의 시간이 모래성처럼 느껴졌다. 암흑 같던 시간이었고,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가 동경하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간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온전히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해외 인턴의 길을 결심했다.
여명을 기다리다
막상 해외취업의 길을 알아봤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이제 갓 학부를 졸업한 뜨내기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없었고, 그나마 나오는 일자리는 영어실력이 부족하면 합격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환경공학 전공 관련 공고는 더 올라오지 않았다. 경력부터 쌓을까 싶어 인턴십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무급인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시행하는 국제기구 인턴십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한국환경공단의 ‘국제환경전문가양성과정’은 전문적인 환경 교육과 국제기구의 일원으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배울 수 있는 데다 이미 국제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과의 네트워킹이 원활한 프로그램이라 매력적이었다. 전공을 활용해 있는 기회라니.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어점수와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준비해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하지만 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마음을 놓을 순 없었다. 전 세계 경쟁자들에 대한 생각이 들어 위축될 때가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커버레터와 이력서를 다듬으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태국 방콕에 있는 UNCCD(사막화방지 협약기구) 아태지역 사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국제기구에 한 걸음 내딛게 된 것이다.
새벽이 밝아오다
UNCCD는 국제 3대 협약(기후변화 협약, 생물다양성 협약, 사막화방지 협약)이 체결되면서 독립기관으로 발족했다. 사막화방지 협약은 다른 협약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속 가능한 토지 사용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유일한 국제 협약이기에 그 중요성은 상당하다. 그 안에서 지역 사무소는 국가 간 기술 및 지역 이전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율성과 다양성을 피부로 느꼈다. 첫날 나의 수퍼바이저는 “See what people see, observe the global society, and think what you really want to do - and just do it.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고, 국제사회를 관찰하고,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그리고 그걸 하면 돼)”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인턴들도 스스로 여러 현안을 살펴보고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개인의 생각이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또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하기 전에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출국 직전까지 영어 공부에 시간을 쏟았는데, 막상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소통능력이 더 중요했다. 내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밖의 요소는 부수적인 게 되었다.
동시에 세계 속 한국의 위상과 국제시민으로서의 역할도 배웠다. 한국 정부는 UNCCD를 비롯해 여러 아태지역 국제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는 자국민이 국제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현안에 대해 국가들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을 바라보면서 국제시민으로서 자랑스러움도 느끼고, 인생의 방향도 정할 수 있었다.
아침이 열리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내가 이전에 쌓은 경험과 지식들을 늘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목표와 사람을 배울 수 있었다. 같은 이상을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청사진을 그렸던 순간은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걸 알기에 매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다.
인턴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UNCCD에 온 후 나의 꿈은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 되었다. 해외 인턴십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보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세계 속에서 배우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역량을 쌓아갈 것이다. 이 경험을 토대로 K-Move 해외취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가하여 진정한 국제환경전문가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