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직의 노고가 담긴 때 묻은 작업복 차림일 거라 생각했지만 박정모 기사의 옷은 깔끔했다. 작은 먼지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어 깨끗한 복장은 필수라는 전언. 청결만큼이나 그의 용접 실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불빛을 따라 용접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제60회 용접기능장 실기시험 만점자 박정모 기사를 만났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될성부른 나무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능, 기술에 대해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전문적으로 기술에 대해 공부했어요.”
17살부터 기술을 다뤘던 현대중공업 LNG공사부 박정모 기사는 지금까지 용접 외길을 달려왔다. 고등학교 때 지방기능경기대회에 나가서 동메달을 딴 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100점으로 실기시험을 통과, 용접기능장이 됐다.
“시험을 잘 쳤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만점까지는 예상을 못했죠. 실기시험 때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제품을 완성해서 제출했는데, 앞서 낸 제품들보다 제 것이 육안으로 보기에 더 깔끔해 보였어요. 하지만 테스트에서도 완벽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 그는 합격유무만 확인하고 시험 점수는 보지 않았다. 함께 합격한 동료 기사들이 점수를 확인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100점’이라는 세 자릿수 숫자를 봤다. 용접기능장 실기는 최근 2년간 합격률이 30% 초반을 기록 중일 정도로 어려운 시험. 그러나 박정모 기사에게는 관계없는 수치였다.
“우리 LNG공사부에서는 2인 1조로 일을 해요.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동료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쉬엄쉬엄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 건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퇴근시간이 빠른 날에는 남아서 하고 점심시간에도 틈틈이 공부했죠. 부서장님, 팀장님의 배려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완벽을 의미하는 만점의 비결에는 가족들의 내조도 빠질 수 없다. 사실 그는 용접기능장을 오래 전부터 꿈꾸고 있었지만 맞벌이 부부로 육아를 도맡아 하느라 선뜻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고. 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을까봐 우려하던 그의 걱정을 덜어준 건 다름 아닌 장모님.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분담해주신 장모님이 만점 용접기능장 탄생의 숨은 일등공신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르는 아크 불빛 하나만 보고
용접을 할 때 가장 즐거워요.
저는 용접을 시작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기술을 향한 열정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만남
박정모 기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2002년부터 용접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6년 현대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건 기능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특수용접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퇴사를 결심하고 현대중공업기술교육원에서 3개월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공부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당시에 저는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큰마음 먹고 울산으로 내려왔죠. 교육을 받으며 필기, 실기시험을 치는데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최우수상을 줬어요. 그때 저희 반에 60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가 상을 탔어요. 그 계기로 현대중공업에서 바로 일하게 됐고요.”
현대중공업 내에서 박정모 기사의 평판은 최상이다. 박일 팀장은 “박정모 기사는 굉장히 꼼꼼해요. 지시하면 대충하는 게 단 하나도 없죠. 혼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라고 그를 평가했다.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칭하는 박정모 기사, 그는 용접이 지겨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용접면(마스크)을 쓰면 앞이 흑유리라서 캄캄해요.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르는 아크 불빛 하나만 보고 집중해야 하죠. 쇳물을 녹여서 제품을 만드는데 용접면을 벗고 결과물을 확인할 때 느끼는 쾌감이 정말 좋아요. 쇠붙이가 녹아서 붙은 면을 비드라고 하는데요. 매끄럽게 만들어진 비드를 확인하면 그 뿌듯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항상 즐거워요.”
박정모 기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능을 보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장이 될 때까지 용접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명장이 되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이기 때문.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 기능을 더 배우는 것이 1차 목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손재주로 시작하게 된 용접 덕분에 그는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자 회사에 꼭 필요한 일꾼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를 수식하기에 무엇보다 적합한 말은 ‘즐겁게 일하는 용접기능장 박정모’가 아닐까.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박정모 기사의 열정은 분명 그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