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에 ‘사오정’은 없다
    2016 국가기술자격취득자 수기 공모전 금상 수상작 글. 대림종합건설(주) 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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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술자격증을 알게 되다
내 나이도 이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의 취업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도 선배들보다 취업이 힘들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전공과는 무관한 건설회사에 입사하며 첫 발을 딛게 되었고, 맡은 일은 전형적인 관리업무였다.

업무를 배우며 한국산업인력공단과 국가기술자격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생긴 것은 수당 때문이었다. 그때는 건설업 관련 등록증 유지와 기술 인력의 현장배치 등을 위해 국가기술자격증이 필수였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자격증 보유자에게 최대 17만 원까지 수당을 지급하고 있었다. 신입사원 때 급여가 70만 원 정도였으니, 자격수당은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을 위한 아주 매력적인 동기였다.
 


국가기술자격증의 도움을 받다
당시에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전공과 무관하게 기사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주었고, 그것이 나에게는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먼저 비교적 쉽다는 산업안전기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기초적인 단어도 낯설고 어려웠다. 용어 정리부터 시작한 힘든 공부 끝에 자격증을 딸 수 있었고, 합격했다고 말해주는 ARS의 녹음된 목소리가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지며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자신감과 요령이 생겨 연이어 폐기물처리기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회사에서는 자기 계발을 위해노력한다는 좋은 이미지도 생기게 됐고, 자격증 수당으로 동기들에게 기분 좋게 한턱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다행히도 나는 구조조정이나 승진누락이라는 칼날을 피해 갈 수 있었는데, 관리직이지만 기사자격증을 보유했다는 경쟁력이 있었고 실제 현장의 기술적인 분야에서도 폭넓은 업무를 수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부득이 회사를 옮기게 됐을 때도 자격증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2008년, 몸담던 회사가 폐업하며 힘겨운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건축분야의 엔지니어로 진로를 바꾸고 싶다며 아내에게 힘들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아내는 당신을 믿는다는 말과 함께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그렇게 비교적 늦은 나이에 수험생 생활을 시작했다. 최종목표는 기술사 취득이었고 우선 건축기사를 목표로 피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가 건축기사는 비교적 쉬운 시험이고 평균 60점만 넘으면 합격이니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건축시공기술사까지 목표로 한 나는 한 과목도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같은 해에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고득점으로 합격하며 곧바로 건축 시공기술사 준비를 시작했지만, 모의고사에서 한 번도 합격점수를 넘은 적이 없어서 무척 초조하고 답답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나를 위해서 도시락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에, 차마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첫 시험에서 합격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자신감이 생겼고, 결국 다음 도전에서 1차 시험에 합격하며 건설회사에도 취업하게 되었다. 이듬해 2차 시험에서도 최종 합격하면서, 건축시공기술사로서 현장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건실한 중견 건설회사에서 안전보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45세 정년’의 줄임말인 ‘사오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아직은 남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틈틈이 공부해서 공인중개사 자격도 취득했고, 현재는 건축공학 독학사 학위와 조경기사 자격증을 위한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국가기술자격증은 시작이다
취업이 힘든 요즘, 젊은이들은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을 합쳐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부모님의 능력에 따라 자신을 ‘금수저’와 ‘흙수저’에 비유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려고 하면 실력과 자격증을 갖춘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취업난이 심하다지만 준비된 인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건설회사에서 국가기술자격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물론 평가의 절대 기준은 아니며, 더 가치 있고 유익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이라는 것은 좋은 동기부여이며, 기술자들의 최종목표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에게 국가기술자격 제도는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서 여러 차례 기회를 주었고, 나를 업그레이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자격증이 그 사람의 능력을 100% 대변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는 하나의 흔적이자 징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업데이트 2016-12-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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