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딩 요리사가 간다
    초등학생 한식조리기능사 김한빈
  • 14009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행동으로 옮길 만큼 단단한 꿈이 있다면….
세상의 기준에서는 조금 어리지만 그 누구보다 당찬 13살 한빈이의 순수한 열정 스토리.
글. 서희동 / 사진. 김인재

나이라는 이름표를 떼다
지난 9월, 어린 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한 초등학교 교실 한복판. 한 소녀의 울음이 터졌다. 반 친구들은 모두 감격의 축하인사를 건넸고, 소녀도 기쁨에 가득 찼다. 주인공은 바로 해남서초등학교 6학년 김한빈 양. 우리나라의 땅끝으로 유명한 해남에서 초등학생 한식조리기능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를 확인했는데, 합격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펑펑 울었어요. 사실 친구들에게 자격증 시험을 친다는 말은 안 했었는데, 덕분에 모두 합격한 것을 알게 됐지요.”

한식조리기능사는 조리사로 근무하거나 식품 가공업체 진출도 가능한 자격증이다. 그래서일까, 합격률이 30%가 되지 않을 만큼 따기가 쉽지 않다. 재료를 씻고, 자르고, 익히고, 간을 맞추면서도 안전성과 영양 및 미각까지 모두 고려해야하며, 정해진 시간 내에 음식을 완성해야한다. 한식의 경우에는 총 52가지의 요리 중에서 무작위로 2가지 요리가 출제되기 때문에 공부 양도 만만치 않다.

중식과 양식, 일식조리기능사 책을 모두 합쳐놓아야 한식조리기능사 책 한 권의 두께 정도가 된다고 하니, 가히 그 분량을 짐작할 수 있다.

“꼭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을 먼저 취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한식이 공부해야 하는 음식의 종류도 많고 어려운 편이라, 준비하면서 기초를 잘 닦아 놓으면 나중에 다른 나라의 요리도 조금은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제 겨우 13살 한빈이가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준비하게 된 이유였다.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고, 끈기 있게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이. 한빈이의 대답 속에는 제 나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의 진중함과 식견이 묻어났다. 하고 싶다고 표현하다


처음 요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부모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정말 재밌었고, 그렇게 음식이 만들어지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처음에는 구경만 하다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식사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채소를 씻는 정도였지만, 어느 놀이보다도 즐거웠다고 한다.

“아버지가 요리하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어요. 그러다 직접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처음에는 채소 씻는 걸 시키셨는데, 열심히 하고 재밌어하니까 나중에는 매번 돕게 하셨어요.”

그렇게 3학년이 되고부터는 칼질도 시작했다. 국을 끓이거나 닭볶음탕을 할 때 필요한 파를 크게 썰어보는 정도였다. 여기까지라면 여느 여자아이나 해볼 수 있는 소꿉장난에 불과하지만 한빈이에게는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요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요리 학원이 새롭게 생긴 걸 알게 됐어요. 꼭 다녀보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결국 바쁜 아버지를 설득해 간신히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오지 못하게 하셨어요. 초등학생은 끈기가 없고 금방 포기하기 때문에 배우기 힘들다고요.” 하지만 한빈이는 선생님을 계속 설득했다.

“요리를 배우려는 이유, 학교 성적 등 이것저것 물어보셨어요. 결국 한 달만 배워보기로 하고 허락을 받았죠. 그렇게 한 달, 두 달 열심히 배웠고, 학원에 계속 다니게 됐어요.” 요리가 좋고 배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배우고자 하는 한빈이의 열정이 '요리를 하기에 너무 어리다'는 어른들의 편견을 시원하게 깨뜨린 것이다.

“처음 3일간은 무생채만 연습했어요. 무를 얇게 썰기 위해서 칼 잡는 법부터 배우며 칼질을 익혔는데, 정말 많이 연습해서 기억에 남아요. 또, 고기를 볶다가 팬에 불이 붙었던 적도 있어요. 엄청 놀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에요. 이렇게 요리를 배우는 과정 하나하나가 전부 신기하고 즐거워서 전혀 힘들지 않아요.”


즐거운 일을 즐기다
당연하겠지만, 학원에 다니기 전에는 요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한빈이는 다른 수강생들보다 기초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보통 3개월을 수강한 후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응시하는데, 한빈이는 5개월이 지나서야 첫 시험을 보게 됐다. 하지만 합격률이 30% 밖에 되지 않는 어려운 시험인 만큼, 단번에 통과하지는 못했다.

“해남에는 시험장이 없어 목포까지 가서 시험을 쳤어요. 주위에 다른 응시자들은 다 어른들이었죠.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긴장되고 떨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험도 여러 번 치다보니,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조리 도구도 제대로 못 챙기고 시험 도중에 칼에 베이기도 했는데 말이죠(웃음). 부족한 부분들을 계속 연습해 도전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제는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계속 시험에 떨어질 때는 속상하기도 했다. 그저 요리가 좋을 뿐인데, 굳이 자격증을 따야하나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한빈이는 씩씩하게 멈추지 않았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보자 마음먹었단다. 결국, 필기시험 2번, 실기시험 5번의 도전 끝에 한빈이는 당당히 '한식조리기능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수강을 말렸던 학원 선생님도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어요. 그러니 부모님은 더 하셨죠. 정말 많이 칭찬해주셨어요."

'한식조리기능사'라는 타이틀만 아니라면, 한빈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딱 13살 소녀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떡볶이를 해준 적이 있는데, 같이 먹으면서 맛있다고 해주니 기분이 좋았어요. 가족들과 함께 먹을 요리도 종종 해요. 국이나 찌개도 끓이고, 파스타도 해드렸어요. 제가 요리한 음식을 다 함께 맛있게 나눠 먹을 때 정말 신나요.”

한빈이가 요리만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성적도 상위권인데다 매년 반장을 맡을 만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고 리더십이 뛰어나다. 새로운 도전까지 즐길 줄 아는 순수하고 야무진 이 어린 친구가 가진 앞으로의 꿈은 뭘까.

“음식을 직접 하는 것만큼 먹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꼭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푸드 칼럼니스트처럼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다양한 요리 방송을 보면서 정보도 얻고, 재밌게 배우고 있어요.” 요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묻자,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

“음… 요리는 즐거운 일이죠. 하는 것도 즐겁고, 먹는 것도 즐겁고요. 또 알면 알수록 더 즐거워져요.” 한빈이는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있을까. 분명한 것은 세상에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다. 어리고 당찬 소녀 한빈이의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업데이트 2016-12-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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