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곧 눈이 내리면
    미리 떠나는 한라산 눈꽃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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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싶으면 꽃들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단풍 뉴스가 나올 때 단풍놀이 가야지 하다 보면 이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약 22km, 가을 단풍의 남하 속도는 이보다 좀 빨라 하루 약 25km. 우물쭈물하다 보면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1월에 챙겨보는 한라산 눈꽃 산행. 미리 준비하는 사람에게 한라산은 잊을 수 없는 인생 설경을 안겨 줄 것이다.
글/사진. 조현태

첫 겨울산행은 ‘영실-어리목 코스’
한라산 주요 탐방로는 성판악, 관음사, 돈내코, 어리목, 영실 등의 코스가 있다. 이중 성판악, 관음사 코스는 백록담으로 이어지고 나머지는 백록담으로 갈 수 없다. 하지만 겨울산행이 처음이라면, 영실에서 어리목을 잇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초반 바짝 오르면서 절경을 흠뻑 즐긴뒤, 어리목으로 여유 있게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 역(逆)으로 올라도 좋다.

어리목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고, 영실은 초반부에 경사가 있으나 거리가 짧아 산행 난이도가 높지 않다. 이를 오르면 주상절리를 이루고 있는 병풍바위, 영실기암(오백나한) 등 괴석과 아래로 보이는 다양한 오름능선 그리고 저 멀리서 귀포 앞바다와 산방산이 눈앞에 펼쳐지니 최고의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또한 각기 왕복산행 코스이기도 하다. 두 코스는 해발 1,700미터 윗세오름에서 만나게 된다. 윗세오름은 위에 있는 세오름이라는 뜻으로, 직선상 연달아 있는 3개의 오름(산행 진행방향으로 족은오름, 누운오름, 붉은오름)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원점회귀 코스가 아니므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돌아가야 하니 버스 배차와 막차 시각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실시간 기상상태, 교통편, 기타 산행에 필요한 정보들은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www.hallasan.go.kr)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또 한라산은 입산제한 시간이 있으니 유의하자. 겨울철에는 영실휴게소를 낮 12시 전에 통과해야 하니 서두르는 것이 좋다. 중요 회귀점에도 입산제한시각이 있으니 숙지해야 한다.


구상나무 군락과 선작지왓
영실탐방안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4km 구간은 걸어서(45분) 올라가거나 전용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인원에 상관없이 1만원이다. 눈이 많이 오는 경우 일반 차량은 올라갈 수 없다. 이런 때는 모르는 사람끼리 즉석에서 인원을 맞춰 올라가는 것이 체력비축에도 좋을 듯하다. 영실휴게소(해발 1,280m)에서 병풍바위, 윗세오름을 지나 남벽분기점까지는 5.8km, 약 2시간 반정도 걸린다. 윗세오름까지만 가려면 한 시간반 정도면 된다 . 영실분화구 능선(해발1,300~1,550) 구간이 가파르고 그 이후는 대부분 평탄하다.

경사 부분을 지나면 구상나무 군락이 나온다. 구상나무는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 년이라고 할 만큼 긴 세월을 산과 함께 하는 나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이다. 학명도 Abies koreana Wilson. 영명으로는 Korean fir. 구상나무는 이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남부 고산들의 해발 1천 미터 이상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 더 물러날 곳 없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소중한 나무다. 그중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이 백록담을 중심으로 한 한라산이다. 눈 쌓인 고사목과 구상나무 터널에서 맘껏 사진을 찍고 오솔길을 걸어 나오면 시야가 확 트인다. 드넓은 선작지왓이 백록담을 담은 암벽을 원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겨울 선작지왓은 날씨가 상상 이상으로 변덕스러운 곳이다. 산 아래는 맑지만 여기는 눈이나 안개 등으로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끈기 있게 기다린다면 구름 사이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사실 한라산 겨울 산행에서 알맞게 쌓인 눈과 반짝이는 상고대를 춥지 않은 날씨와 파란 하늘 아래 만나려면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어렵다. 폭설로 입산 금지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실시간 일기예보를 챙겨야 한다.


쉼을 위해 떠나는 여행
윗세대피소에서는 컵라면 등을 판다. 한겨울 산행에서 만나는 컵라면은 진리다. 김밥이나 김치를 챙겨온다면 임금님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어리목으로 가려면 늦어도 윗세오름통제소를 3시 전에 통과해야 한다.

뜨끈한 컵라면 국물로 몸을 녹인 후 대피소를 뒤로 하고 나오면 확 트인 설경이 기다린다. 올라올 때의 영실코스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만세동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눈밭에서 CF 한편
찍고 가자. 눈썹 위에 눈도 좀 얹어주고 동심으로 돌아가 눈밭에 한번 뒹굴어도 보고. 사제비 동산을 지나 어리목휴게소로 내려가는 숲길은 말 그대로 겨울왕국으로 가는 길목 같다.

어리목은 길목이라는 뜻이다. 울울하게 자란 나무들은 지나는 등산객들 머리 위로 툭툭 무심한 듯눈송이를 던져준다. 숲 속 길에서는 자주 멈추어서 하늘을 보아야 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아득히 높은 곳에서 눈부신 눈꽃이 별처럼 반짝인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겨울같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마종기 시인의 읊조림처럼 겨울 산행은 번다한 일상을 잠시라도 접어두고 쉼을 위해 떠나는 여정이다. 순백의 종이 위에 무엇인가 다시 그려보기 위해 가는 여행이다. 뜨거운 몸과 차디찬 눈바람, 냉정과 열정이 부딪혀 만들어 내는 육각형의 꿈을 그려보자. 겨울왕국의 숲을 빠져 나와 계곡을 건너 졸참나무와 당단풍나무가 사랑을 이루는 연리지를 만나면 산행은 끝이 나지만, 가슴에 담아오는 아름다운 설경은 아마도 겨울이 올 때마다 내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 것이다.


겨울 산행 Tip

겨울 산행을 위해선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등산복, 방수 등산화, 스패츠, 방수 장갑, 귀를 보호할 수 있는 모자, 스틱, 그리고 아이젠은 필수다. 옷은 얇은 옷을 여러 겹껴입는 것을 추천하며 젖는 경우를 대비해 여벌의 옷과 양말도 준비하면 좋다. 핫팩도 준비해주면 따뜻한 산행을 도와줄 것이다.

따뜻한 물과 영양갱 등 비상식량도 챙겨야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중한 얼굴 피부를 위해 선크림을 듬뿍 발라주는 센스. 겨울산행은 표시된 등산로를 절대 이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눈 위를 함부로 들어가면 매우 위험하니 절대 삼가야 한다.

 

업데이트 2016-12-02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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