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야, 엄마는 지금 이 순간을 20년 넘게 기다렸어. -영화 ‘덕혜옹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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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이덕혜’는 일본의 패전 소식을 듣고서 고국인 조선에 돌아가기 위해 딸의 손을 잡고 항구로 향한다.
20년이 넘게 기다려왔던 순간이지만, 그녀는 입국거부명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로부터 17년 후, 1962년 1월 26일, ‘이덕혜’는 51세의 중년 여인으로 풍상에 찌든 얼굴과 초점 없는 눈매를 한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이덕혜’의 일생을 담은 영화, ‘덕혜옹주’이다.


옹주’란 왕의 후궁의 딸을 뜻한다. 공주는 아니지만, 옹주 역시 공주와 함께 귀한 품계다. 덕혜옹주는 고종이지극히 사랑했던 고명딸로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다. 환갑의 나이에 얻은덕혜옹주는 강제 퇴위로 실의에 빠진고종의 삶의 큰 위안이었고, 사료에의하면 딸 바보였던 고종은 덕수궁 내유치원을 만들 정도로 딸을 애지중지하였다. 영화 속에서도 고종의 품안에쏙 숨으며 숨바꼭질을 하는 덕혜옹주의 모습을 보며, 환갑의 나이에 얻은늦둥이 딸의 재롱이 얼마나 귀엽고,사랑스러웠을까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영화 ‘덕혜옹주’는 고종의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일본은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덕혜옹주를 강제로 일본에 유학을 보낸다. 유학생활을통해 내선일체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녀는 그와 반대로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는 독립운동가로 성장한다.영친왕과 함께 상하이 망명을 결심하며 망명길에오르나, 계획이 친일파에게 발각되며 결국 망명에실패하고 만다.

일본인과 강제로 정략결혼을 한 후, 딸 ‘정혜’를 낳고 고요히 살아가던 중 일본의 패전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딸과 함께 항구를 찾아간다.하지만, 그녀는 정부로부터 입국거부를 당하게 된다. 이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정신병원에 입원한다.

20년이 지난 후에야 김정한 기자(영화 속 박해일)의갖은 노력에 의해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와 초점 없는 눈으로 고국의 땅을 밟게 된다.


이 영화는 소설 「덕혜옹주」를 원작으로, 실제 덕혜옹주의 삶을 모티브로 한 팩션(Faction, Fact와Fiction의 합성어) 영화이다. 실제 사료에 의하면 영화 속에서 그려진 덕혜옹주의 삶(강제 유학, 정략결혼, 조현병 등)은 20살 이전의 겪었던 일이었으나,영화에서는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성인 이후의 삶으로 각색하였다고 한다.

영화를 본 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주연배우 손예진의 연기이다. 그녀의 미모는 이미 여러 영화를 통하여 느껴온 바이지만, 이번 영화에는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의 감정연기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특히, 입국거부를 당할 당시의 감정을 표현한 그녀의 연기는 머릿속에 두고두고 생각나는 장면이다.억울함과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비통함이 섞인눈물 연기는 조현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정신병원에서 박해일을 만나 눈물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절실히 느껴졌다.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여기저기서훌쩍임이 들려왔다. 역사에는 남아있지 않은, 그러나 현실이었던 그녀의 기구한 삶에 대해 관람객들이느꼈던 감정들이 사그라지지 않은 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영화 ‘덕혜옹주’와 실제 덕혜옹주의삶은 차이가 있다. 실제로 그녀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는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하지만, ‘덕혜옹주’ 영화를 통해 모두가 그동안 모르고 있던 역사 속의 인물을 알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역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을 듯하다.돌아오는 주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떠올리며 덕수궁을 거닐어보아야겠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 덕혜옹주의 마지막 글에서
업데이트 2016-09-2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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