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물의 멋, 고이 보듬어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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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옷은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
유명한 편물장인이 있으면, 온 집안이 대를 이어 사 입기도 했다.
그때는 손이 곧 기술이라 편물 만드는 재미며, 사고파는 재미가 공존했다.
아, 옛 것은 그래서 그리운가.
편물인생 60년, 김순희 명장(85)을 만나 편물의 멋을 그려본다.
글. 김민정 / 사진. 이승훈


오기와 재기(才氣)의 합

“나도 장갑 하나만 만들어 줄래?” 그가 편물을 쥔 건 그때쯤이었다. 털실이 없던 시절, 미군의 양말 두 짝을 풀어 장갑을 만든 게 시작이었다. 어릴 적, 바늘과 실, 헝겊만 가져다주면 만들어주지 하며 재미를 붙인 게 운명이 되고 어느덧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명장의 아버지는 교육열이 굉장한 분이셨다. 그의 고향은 안동 군자마을. 태어난 곳은 초전(草田)이라고 불렸다. 지금 그의 호가 초전인 이유다. 그렇게 경북에서 났지만, 학교공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에서 했다. 그러던 그의 나이 열아홉 때 6.25전쟁이 발발했다. 모두가 혼란스럽던 시절, 서울에서 안동으로, 안동에서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며 그 시절을 건너왔다.

“그때 그 시절은 말로 다 못해요. 모두가 부산으로 피란을 가고 학생들은 임시로 마련한 천막에서 공부를 했지요. 강의실이 아니라 천막이니 옆에서 무얼 배우는지 훤히 보이는 거야. 그때 내가 교육학과와 가정과 공부를 같이 했어요. 어쩌면 가정과 공부에 더 열성이었지. 난리 통에도 손을 가만히 두질 못했으니 그 재미는 타고난 거예요.”


명장은 묘하게도 손재주와 교육열을 모두 가졌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 없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다 사달이 난 것이 제일편물의 설립(1957)이었다. 명장의 집안은 종갓집으로 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편직 스웨터로 돈을 벌겠다 하니 문중의 뜻을 거스르는 꼴이었다. 명장에게도 명분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자 했으나 집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딱 3년만 돈을 벌고자 했던 것이다. 온 집안이 시끄러워지자, 마지막으로 하겠노라 하며 열게 된 그의 첫 편물 개인 전시회에서 또 다른 의미의 사달이 났다. 전시품 중 하나가 경기여고 체육복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때, 내 길이다 싶었다. 1962년, 제일편물학원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으로 길을 트면서 본격적인 편물인생이 시작되었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와 재기(才氣)가 합하였으니 누군들 막을 길이 있었을까.

명장은 그 후 해외의 전통 직물을 국내에 전시하고, 우리 직물의 아름다움을 국외에 알리는 교환전시를 숱하게 해내었다. 편물을 만드는 국내의 기술인들이 해외의 편물을 직접 보며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모두가 그럴 수 없으니 전시를 통해 보도록 하자는 마음이었다. 미국 네브래스카 대에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퀼트연구센터인 IQSC International Quilt Study Center)를 통해 16개 나라와 물물교환 방식을 취하는 등 총 16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삼침(三針) 기법, 끝맺음을 분명히

물론 교육에의 뜻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경기여고 재학 시절, 전쟁으로 인해 안동에 머무를 때였다. 동네 사람들이, 일 년 중 농번기가 아니면,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까웠다. 취미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낸 것이 뜨개질이었다.

“동네 여자아이들한테 ‘얘,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자’ 그러고는 모여서 밤새 자수며 뜨개질을 하는 거예요. 배고프면 옥수수 밭에 나가서 따 먹기도 하고. 그러다 날 새서 보면 따 먹은 옥수수가 전부 우리 집 거야.(웃음) 어머니가 보시고는 ‘배우느라 그랬는데 어쩌겠니?’ 하셔요. 그렇게 뭐든 나누면서 살았지요.”

실은 모든 건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바느질을 하다가 막힘이 있으면 어머니는 끊지 말고 매듭을 풀라하셨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보자기 삼침(三針) 기법이라고 한다. 세 번 잘 생각하고, 세 번 잘 참고, 삼 년 최선을 다하라는 뜻. 이때의 3번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3년 씩 10년을 한결로 행하면 반드시 이룬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편물을 해 온 힘이다.

“편물의 가치는 그거예요. 실이 모나지 않고 둥근 거. 바늘과 실, 천 조각만 있다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지요. 또, 누구나 할 수 있고 온 나라에서 통하지요.”

허나 편물은 시작했다면 끝을 맺어야 한다. 실과 바늘 가는 데는 반드시 매듭이 있어야 하기에. 명장은 자신이 혼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편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뜻을 두었다. 그 중심에 자신의 호를 새긴 초전섬유․퀼트박물관(1998)을 세우고 한 해 두 해 작품들을 모아온 게 어느 덧 18년이다.

그 안에는 조선왕조 궁중의상과 세계의 민속복식, 전통자수 및 보자기, 해외의 패치워크 퀼트 작품, 각국의 민속복식 인형 등 총 1천 8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지역주민, 다문화가족,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문화 나눔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한 해 약 5,00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편물을 통해 들여다 본 조국

그는 아이들이 찾아와 편물 배우는 것이 즐겁다. 진득이 앉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싶다. 한때, 명장의 이러한 교육열이 크게 빛을 발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기능올림픽대회의 시초다. 시간을 거슬러 1964년, 그가 일본 연수중에 유럽으로 학습여행을 떠난 때였다.

“우연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를 봤는데 아, 놀라운 거예요. 그러다 동경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석 중령’이라는 제일편물 손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얘기를 했더니, 글쎄 이 양반이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좋은 것은 우리나라에도 들이고 싶었다. 그가 손님으로만 알던 석 중령은 당시 꽤나 힘 있는 인물로, 명장이 제안한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 전해들은 고위직 관계자들 또한 우리나라 기능올림픽대회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명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었고 1966년, 우리나라 제1회 전국기능경기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명장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편물직종장과 각종 심사위원을 도맡으면서 그 뜻을 이어나갔다.

그리고2000년, 대한민국 편물명장 1호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그가 이룬 건 편물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 탄생 100주년&환국 50주년 기념전 개최 및 의복 환수, 《조선왕조 궁중의상》 제작은 명장이 되짚은 우리의 역사다. 그가 덕혜옹주 의복 환수에 뜻을 둔 것은 대한민국 마지막 황태자 비인 故이방자 여사와의 인연에 기인한다.

뜨개질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1984년, 故이방자 여사의 제안으로 명장이《조선왕조 궁중의상》을 펴내면서 가까워졌고, 지난해 2015년, 문화재청이 덕혜옹주 의복을 환수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며 그 뜻을 받들게 되었다. 덕혜옹주의 유물 7점(녹색 당의와 홍색 스란치마, 진분홍 저고리와 풍차바지, 노랑 반회장저고리와 분홍치마, 명주 단속곳)이 우리나라로 되돌아온 것은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그 바탕에는 명장과 일본 문화학원(이사장 오누마 스나오)사이 5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오랜 문화교류가 있었다.


“두 나라가 기증을 협의하는 데에 수개월이 걸렸어요. 워낙 우리나라의 뜻이 확고했기에 간곡하게 설득했어요.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부터 귀중한 유물 7점을 환수 받았으니 이제 내 마음이 한결 편하답니다.”

다가오는 2017년이면 그의 편물인생도 60년을 맞는다. 차곡차곡 쌓아온 표창과 공로 위에 참 오랜 시간이 앉았다. 이제 명장은 그간 조선왕조 궁중의상의 보전을 위해 힘써왔듯이 한 번 더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곳에서 공중의상 전시회를 열고자 한다. 고종황제가 미국 워싱턴에 영사관을 세우기 위해 구입한 건물이 국가로 환원되어 곧 박물관의 모습을갖출 예정이므로.

‘누비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나 울 같은 것을 넣는다는 의미. 우리나라 누빔이 곧 서양의 퀼트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조각보와는 조각을 잇는다는 맥락에서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마다 개성이 담긴다. 김순희 명장은 그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한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계속될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를 누빈다는 진리를 믿기 때문에.

 

업데이트 2016-09-0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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