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이 답인 시대에 관한 넓고 사려 깊은 담론
    성공人터뷰 - 김종현 국제기능올림픽선수협회장(㈜쎄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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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긴 말이 필요치 않다. 기술이 모든 질문의 대답이 될 테니.
자동화 설계파트에서 출발해 평생 산업현장에서 외길을 걸어왔지만
㈜쎄크 김종현 대표는 아직도 해야 할 말이 많다.
이유는 일종의 사명감에 가깝다. 우리나라 기술 발전과 역사를 함께한 인물,
지난 1월 새롭게 국제기능올림픽선수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그를 만났다.
글. 정은주 / 사진. 이성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도전의 힘

성공한 사람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크건 작건 눈에 띄건 그렇지 않건. 중요한 것은 현재를 있게 한 이유를 잊지 않고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기능올림픽이라는 자신의 뿌리에 물을 주고 거름을 더해 무성한 가지를 뻗어 올린 김종현 대표처럼.

돌이켜보면 참으로 치열한 삶이었다. 학창시절부터 남달랐던 끈기로 오직 한 곳만을 향해 질주했던 그는 외로운 일등이었다. 상대가 못하는 걸 기대하지 않고 자신이 더 잘하는 방법을 찾아 나섰던 소년은 태백공고 재학 시절 일반학생보다 서너 배 많은 시간을 오직 실기훈련에만 쏟아 부었다. 비단 대표선수라는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고가 되고 싶었다. 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을 키웠고, 강원도 내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삼성전자에서 10년을 근무했다. 당시에는 기업 차원에서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들을 양성하던 시기였다. 국제기능올림픽 메달은 기업의 이미지 그리고 품질과도 직결됐다. 삼성에서 처음 선수단이 만들어졌을 때, 김종현 대표 역시 선수단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삼성 선수단 중 유일하게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 그리고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을 나란히 손에 넣었다.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발목을 잡았지만 오직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약 3년 동안 후배들을 대상으로 기술지도를 병행했으며, 입사 5년 만에 드디어 원하던 자동화기계 설계파트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진급도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순간의 달콤함에 마음을 놓지 않는 법. 당장은 안정적이지만 앞서 내다본 미래에는 두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구조조정 바람이 일기 시작하던 90년대 초, 불안정한 현실을 바로 옆에서 보고 겪으며 그는 생각했다. 자신을 위한 일을 해보자고.

“그때 든 생각은, 회사는 현재능력과 미래가치 두 가지만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더라도 그건 이미 지난 일이 되는 거죠. 과연 나는 어떨까 고민해보니 자신이 없더라고요. 저는 기술자로서 역량을 계속 발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쎄크의 시작이었다.
 

기술중심 철학이 바탕이 된 기업가 정신

삼성전자에서의 근무기간 동안 그는 능력중심으로 인재를 이끌고, 평가하고, 보상하는 것이 기업의 훌륭한 성장 동력이 된다는 걸 체득했다. 창업 처음부터 연봉제를 적용하고 보상 역시 상대평가를 통해 차등 적용하는 방법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

김종현 대표는 조직에서 평가란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피력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자칫 나태함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쎄크의 매출은 점차 상승했고 내실 있는 강소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물론 줄곧 상승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창업 초기에는 위태로움의 연속이었다.

심한 매출 기복과 협력사의 부도 등으로 위기도 숱하게 겪었지만 그는 긍정의 힘을 확신했다. 때문에 흔들림 없이 한길을 걸을 수 있었다.

“뒤돌아보면 국제기능올림픽의 힘이었습니다. 긍정의 힘이죠. 대회에서는 불안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는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제 경우 어릴 때부터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항상 ‘그래도 방법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기업가로서 김종현 대표의 꿈은 ㈜쎄크를 100년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바탕은 기술이다. 탄탄한 기술력이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기술 개발에 대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는 주력 제품인 산업용엑스레이검사기, 전자현미경을 이을 가속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우주항공이나 중공업, 방위산업분야에 사용되는 검사시스템에 적용됩니다. 암 치료용 의료기기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죠. 우리 연구원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국내 최초라 구체적인 출시 일정은 상황에 따라 조정될 테지만, 제품 개발 마무리 후 올해 안에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인재 양성의 꿈

기업가 김종현이 이미 정상궤도에 올랐다면 국제기능올림픽선수협회 회장으로서의 김종현은 이제 출발선상에 있다. 스스로 ‘국제기능올림픽은 곧 자신의 뿌리’라고 말하는 그. 기술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던 고등학교 때부터 기술을 선도하는 리더가 된 지금까지 다양한 위치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대회와 인연을 이어온 걸 보면 충분히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국제기능올림픽이라는 제도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회 선수로 시작해 심사위원, 회장에 이르기까지 38년 동안 줄곧 과정을 함께했으니까요. 그래서 회장이 된 이 순간의 감회가 남다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국제기능올림픽에 다녀온 회원들이 더 크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기술중심사회라는 걸 증명해 보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죠.”

이러한 철학은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인재를 키우고, 국제기능올림픽 출신 선수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국제기능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던 1967년부터 약
50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방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무려 17만 명이다.

김종현 대표는 입상 유무와 상관없이 최상급의 재능과 실력을 갖춘 인력들이 제대로 커나갈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고 피력한다.

“좋은 재목으로 자랄 가능성이 분명한 인재들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써 물도 주고 거름만 주면 훌륭하게 역할을 해낼 텐데, 아직은 사회적 인식과 기반이 그에 미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때문에 김종현 대표는 앞으로 이에 필요한 시스템과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투자할 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특히 국제기능올림픽에 다녀온 지 10년 이내의 젊은 선수들에게 집중하려 한다. 국제대회에 출전했을 정도니 기술은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보고 인성, 마케팅, 경영 등 성장의 밑거름이 될 전반적인 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또한 성공한 선배들이 멘토가 되어 기술이 전수될 수 있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

지금껏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가치 있는 행보. 김종현 대표는 다시금 시작의 각오를 다져 본다. 그리고 긍정의 힘으로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꿈이 현실이 될 미래가 머지 않았다.

 

업데이트 2016-03-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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