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을 만드는 남자 옷으로 행복을 나누다
    김재근 의상디자인 분야 대한민국 숙련기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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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도 가위질도 야무진 손길의 한 남자. 그의 손길이면 평범해보였던 천도 누군가에게 꼭 알맞은 옷으로 태어난다.
옷을 만들고, 옷으로 행복을 나누는 대한민국 숙련기술자 김재근 씨를 만났다.


글. 김민정 / 사진. 이승훈



의상에 푹 빠진 소년, 옷 만드는 사람이 되다

사람의 체형에 맞게 치수를 재고 재단하고 봉재하는 일. 의상디자인은 섬세함이 필요한 만큼 여성이 독보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 정확한 계측과 손놀림으로 옷을 만드는 남자가 있다.

1970년대 길가에 의상점이 즐비하던 시절, 쇼윈도의 의상이 그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의상의 화려함에 이끌린 것만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몸이 많이 약했던 터라 문득 또래들처럼 공장에서 일하며 밥 먹고 살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온종일 의상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자가 옷 만드는 일을 한다고 부모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평생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왔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학교에 오셨는데 한참을 듣고 보니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허락해주시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얘기였던 거죠. 그날 집에 와서 기다란 나무 작대기로 엄청나게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저는 끝까지 해야겠더라고요.”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방 전체를 의상사진으로 도배해놓고 밤새도록 공부하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는 진짜 옷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다

울산 중구의 은주패션은 그의 오래된 일터다. ‘은주’는 둘째 며느리 이름인데 시집와서 의상디자인을 배우다가 제 이름으로 한 번 해보겠노라 문을 연 곳이다. 지금은 시아버지인 그가 도맡아 기능사자격증이나 기능경기대회 준비하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일이야 20대 청년시절부터 했으니 꽤 오래되었다. 울산에서 의상디자인이라면 그를 찾는 이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하는 제자들은 실력이 상당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저를 찾아온 학생이 있어요.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이 졸업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는데,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까지 수상했습니다. 여러모로 잘 따라줬지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기술의 귀중함을 더 깊이 느낍니다.”


물론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그도 첫 월급을 받은 게 고작 500원이었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기술에 자부심이 있었던 터라 베테랑 재단사들 월급 7000원을 보고 자존심이 꽤 상했단다. 그 길로 아는 누님이 다니는 의상실에 찾아가 대뜸 일자리를 구했다.

“그때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일 잘한다고 큰 소리 치고 들어갔습니다. 근데 초짜가 잘할 리가 없죠. 재봉부터 자꾸 틀리니 옆 사람한테 ‘이것 좀 뜯어줘’ 하고 부탁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베테랑 재단사들에게 물어가며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그는 기술은 천천히 느는 법이 없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곧 실력이라고 했다. 그가 40년 세월을 숙련기술인으로서 가르치는 이로서 제 자리를 지켜온 비결이다.



옷으로 행복을 나누다

그는 숙련기술인이기도 하지만 봉사자이기도 하다. 그가 회장으로 활동하는 울산숙련기술인봉사회는 주로 울주군에 있는 어르신들을 찾는다. 봉사분야는 이․미용, 제과제빵, 한복, 피부미용, 화훼,의상디자인 등 다양하다.

어르신들 이발도 도와드리고 곱게 화장한 후에 한복을 입혀 장수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한다. 의상디자인의 경우, 어르신들 안전띠나 바지를 만들어가고 겨울에는 목도리도 만들어가며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채워드린다.

그렇게 지난 해 모인 봉사시간만 555시간. 정기적인 봉사활동 외에도 개인적으로 찾는 일들이 많으니 시간도 금방 쌓인다.

“봉사는 한 번 시작하면 자꾸 가게 됩니다. 어르신들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때 되면 꼭 찾게 되지요.”

예순이 넘은 나이, 다들 ‘봉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의상기술이 사람의 몸에 집중하는 일이라면 봉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그가 숙련기술인으로서 더욱 빛나는 이유다.



성공이란 주관이다

그가 정의하는 성공은 이렇듯 ‘주관’으로 사는 삶이다. 그가 세상이 보는 시각과 잣대에 맞춰 살았다면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묻어난다. 그는 아직도 밤 12시가 되기 전에는 일을 마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의상디자인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매년 한 가지씩 목표를 이루고 있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명장에 도전해볼 겁니다. 노력한 과정이 중요한 만큼 멋진 결과도 중요하겠지요. 물론 300시간의 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한 가지 기술을 갖추세요. 본인의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질 겁니다.”

옷으로 행복해졌다는 그는 옷으로 행복을 나누고 있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성공한 삶이란 이렇듯 확신과 한결같음의 조화가 아닐까.
 

업데이트 2016-02-0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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