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칼로 세계를 베다
    1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수상자 (주)AST젯텍 정재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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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출신 ‘사원’ 으로 업계 최고 대우 받으며 동명중공업 입사

정재송 대표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처음 기계조립 기술에 입문했다. 유교사상이 뚜렷했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만큼 그는 처음에 공업고등학교라는게 있는 줄도 몰랐다.

“사농공상이라해서 기술보다는 검사, 판사,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에서 기숙사와 장학금이 지급되는 공고에 주저 없이 진학했다. 학교에서 하루하루 기술을 쌓아갈수록 그의 마음속에서도 최고의 기술인을 향한 열정이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다. 고2때는 한 번에 따기 어렵다는 기능사 자격증을 무려 2개나 취득하기도 했다.

“기계가공조립기능사, 전산응용기계제도기능사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며 기술 분야에 재능을 발견하며 기술인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교에서 20명 정도만 취득할 정도로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며 손꼽히는 우수 기능 인력으로 인정받은 그는 파격적 대우를 받고 동명중공업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기업에서는 대졸 출신은 사원, 공고 출신은 공원으로 경력 커리어가 분명히 구별되어있었기 때문에 공고출신인 제가 사원으로 입사한 것은 업계 최고의 대우라 할 수 있었습니다.”

정 대표는 입사 후에도 사내에서 유압 조립 및 실험 업무를 맡아 기술력의 두각을 나타냈다. 사원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기술연수생으로 발탁된 것이다.

“경력 10년 정도가 돼야 겨우 갈 수 있었던 기술 연수의 기회를 입사 3-4년차였던 제가 얻게 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후엔 대우조선공업에 스카우트를 받고 많은 유압 기술이 요구되는 조선 유압기술과 석유시추선 유압기술개발에 기여하며 2년 만에 기술팀장으로 고속 승진하는 등 다시 한 번 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경남 산업대 공업경영학과에 진학해 품질관리, 작업관리, 원가관리, ERP 등을 공부하며 기술경영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토양도 다져나갔다.
 

국내최초 ‘워터젯’,
세계최초 ‘부채꼴 워터젯(Fan Type Water Jet) 디플래싱 머신’ 개발로 매출 200억대 기업으로 쑤욱!

대우조선공업으로 이직한 이후 높은 연봉과 직급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던 정 대표는 안정된 환경을 벗어나 자신의 기술력을 맘껏 펼치고자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전 회사 선배가 창업하는 작은 회사에 기술이사로 합류한 것이다. 도전의 결과는 놀라웠다.

“기술 잡지에서 물로 쇠를 자르는 ‘워터젯’ 기술을 우연히 접한 뒤 1년 동안 ‘워터젯’ 기술 개발에 매달린 결과 국내최초로 ‘워터젯’ 기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미국대사관 도서관에서 워터젯 관련 외국 산업체들을 찾아내 팩스로 자문을 구하면서 하나하나 부품을 개발했습니다.”

자동차 대시보드 커팅 등에 사용됐던 워터젯은 새로운 자동차 모델 개발에 따른 금형 교체 비용을 절감시켜 기존 열방식 커팅보다 효율성이 높아 획기적인 기술로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비로소 창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에서 붐이 일던 반도체 시장에서 기회를 발견, (주)젯텍을 설립해 이번엔 세계 최초로 ‘Fan Type Water Jet 디플래싱 머신’ 개발에 성공했다.

“디플래싱 머신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장비로 기존에는 호두가루나 유리가루를 분사시켜 제거했는데 먼지, 소음, 기계 마모 등의 문제가 많아 정밀성을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공장에 적합하지 않아 업계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는 국내 중공업으로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개발 제안을 의뢰받은 지 6개월 만에 다이아몬드 노즐을 활용한 디플래싱 머신을 개발하며 매출 12억 원을 달성했다.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폴 이후 IMF가 발생하며 (주)젯텍은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해외 시장에도 이미 우리 장비와 유사한 디플래싱 머신이 있었지만 여전히 제품 불량, 기계 고장 등을 일으켜 장비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해외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만, 홍콩, 모로코, 멕시코 등지에 수출하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페어차일드, 필립스 등에 연이어 납품을 성사시키며 단숨에 세계 기술과의 격차를 좁혔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반도체 강국 일본에도 제품을 수출함으로써 그 경쟁력을 입증받았으며 디플래싱 머신 수출로 (주)젯텍은 매출 200억 원대를 기록하며 2007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인수합병 시너지로 1000억대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을 향해 도전

정 대표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성장가능성이 높은 ‘디스플레이’ 시장에 진출,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되기 위해  디스플레이 판넬에 PCB 부착 기계 전문 기업 (주)AST와의 인수합병도 과감히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이저 연구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디스플레이 부품 본딩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7년 만에 이방성 전도 테이프에 오랜 시간 열을 가해 합착하던 기존 방식을 보완한 디스플레이 본딩 장비 기술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올해엔 주 고객사에 디스플레이 본딩 장비를 전량 독점 공급하는 성과를 이뤘다.
 

정 대표의 과감한 사업 재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종합 모듈 장비 기업을 향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최근 LCD, OLED 본딩에 선도적인 기술력을 갖춘 전문 기업 성진하이메크의 사업을 새롭게 인수하며 디스플레이 장비 분야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주)AST젯텍은 수출이 매출의 약 70%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성진하이메크 인수와 함께 직원 390명, 매출액이 약 1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또한 정 대표는 변화하는 산업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 매출의 8%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그 결과 지금까지 특허 58건, 실용신안 1건, ISO인증 1건 총 60건의 특허를 냈다.

무엇보다 그는 ‘창의, 도전, 성취, 인화’의 경영철학으로 인재 경영을 실천하며 직원들의 높은 신임을 얻고 있다.

“저희 회사 이직률은 2-3%대로 굉장히 낮습니다. 창업 핵심멤버들이 아직까지 회사에 남아 핵심 요직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구미공장을 천안으로 이전할 때도 신혼인 기혼 여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이 한 명의 퇴사자 없이 천안으로 이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공한 우수 숙련기술인이자 기업가로써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최고라고 내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술을 반드시 갖추십시오. 기술인에게 있어 잘 갈고 닦은 기술 하나는 사회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자신감이 됩니다. 그 자신감은 기술자로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줄 것입니다.”
 

 

 

 

 

업데이트 2015-12-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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