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느질하는 이 청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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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 뛰어든 청년, 청바지를 만들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다. 유난히 패션에 관심이 많던 소년은 옷을 사다 사다 결국은 옷을 만드는 청년으로 자랐다. 그것도 제대로.

비스포크데님 허정훈 대표는 패션과의 인연을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유행하던 힙합바지가 너무 멋있어 보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게 줄곧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대신 수시로 일본 잡지책을 사서 보며 패션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는 그. 


패션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없는 옷이나 신발은 해외에서 구입해 사용하고 중고로 되팔기를 반복, 워낙 희귀한 아이템이라 옷을 사고 팔아도 오히려 수익이 남을 정도였다. 사업가적 기질은 그때부터 발현됐다. 옷을 좋아하니 옷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왕 옷을 팔 거면 제대로 배워 뛰어들자고 공부를 시작했다. 제대로 된 패션공부는 그렇게 출발됐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는 무작정 옷부터 만들었다. 1학년 때는 옷 만드는 수업이 없는데 도무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다. 도서관에서‘ 남성복’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을 모조리 빌리고 당장 재봉틀과 청지도 샀다. 패턴이니 봉제니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도전했다. 그때부터 혹독한 독학이 이어졌다. 

 

“ 6벌쯤 만드니까 옷 같은 게 나오더라고요. 학교에 입고 가서 교수님께 직접 만든 옷이라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너 같은 학생은 처음 본다’며,‘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그 말에 힘을 얻어 더욱 재미를 붙였어요. 군대갈 때까지 그렇게 청바지만 120벌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하고 많은 옷 중에 왜 청바지일까. 허정훈 대표는 단순히‘ 패턴조각이 적어서’ 선택한 거라 말한다. 당시에는 지식이 전혀 없던 때라 패턴 조각이 적은 바지가 그나마 단순해 보였고, 또 워낙 청바지를 좋아한다는 게 선택의 충분한 이유가 됐다. 한참 후에 알게 된 거지만 바지는 옷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 그러니 처음부터 패턴과 봉제 공부를 제대로 한 셈이다.

덕분에 그는 패턴과 봉제라면 어디서건 잘해낼 자신이 있다. 손수 패턴을 뜨고 봉제를 해 옷을 만들면서 이 둘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기에 지겹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다. 

 

자신만의 브랜드, 비스포크데님을 열다
그는 패턴과 봉제를 모두 할 수 있는 자신의 강점과 그동안 청바지를 만들어 온 경험을 살려 지난해 12월 비스포크데님이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직접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정도였다.

그가 정확한 치수를 재고, 고객이 원단부터 실 색깔까지 신중한 선택의 과정을 거쳐 가봉한 옷을 입어보고 또 수정하는 과정은 오직 한 벌의 청바지를 위해 집중된다. 그 즐거운 불편함은 비스포크만의 매력. 말만 하면 단번에 살 수 있는 기성복과는 전혀 다른 게 당연하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러 번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그러나 고객들도 천천히 만들어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겨요. 온전히 한 사람만을 위한 청바지를 만든다는 점에서 저 역시 재미를 느끼고요.”

그래서 요즘 그는 일부러 하루에 한 벌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 수준의 옷을 만드는 게 옳다는 철학 때문이다.‘ 많이’ 보다‘ 잘’ 만들겠다는거다. 한때 속도와 정확성에 초점을 맞춰 연습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컨디션에 따라 옷에 미세한 차이가 생기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고객은 알 수 없을 만큼의 차이라도 저는 알잖아요. 그럼 안되는 거죠. 돈을 벌기 위해 제 마음에 완벽하지 않은 옷을 만들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재밌는 건 최고는 최고를 알아본다는 점. 그저 청바지를 잘 만드는 데만 집중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기업체와 백화점에서의 러브콜이 줄을 잇는다.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다.
셔츠나 슈트 같은 옷들은 손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이 많지만 손으로 만든 청바지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희귀한 편.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고 일반 옷과 봉재 방식도 다른데다 패턴과 봉제 전부를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다. 물론 그만큼 아직까지 수요가 폭발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입어본 사람은 대부분 그의 바지를 다시 찾는다.

“외국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청바지를 만드는 사람이 많아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것뿐이죠. 저는 앞으로의 10년을 보고 매장을 열었어요. 돈을 벌건 못 벌건 미리 선점하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식과 노하우,후학과의 공유를 꿈꾸다

패션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곳은 바로 현장이라 말하는 허정훈 대표.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철저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공장을 견학하며, 프로모션 회사에서 발로 뛰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조언을 그는 기특하게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흡수했다.


또 한 가지, 대학 마지막 학기 때 한국산업인력공단
의 산업현장교수지원사업으로 대한민국 패턴 명장 금위수 선생을 만난 경험을 그는 패션을 공부하는 동안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두 번의 수업은 짧았지만 매우 강렬했어요. 선생님
께서 가지고 계신 노하우 등을 강의해주셨는데 학교에서 접하기 힘든 지식들이라 신선했어요. 당시 이미 400벌 정도의 옷을 만들었을 때라 기초적인 깨달음보다는 제가 익힌 것들을 확인하고, 또 놓치고 있던 부분을 보강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 과정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졸업 후에도 교수님께 부탁해 강의를 들으러 한 번 더 갔을 정도에요.”
 

허정훈 대표는 기술이란 나라를 움직이는 정말 중요한 부분임에도 너무 천대 받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우수한 기술을 갖춘 명장들이 젊은 세대에게 지식과 노하우를 전하는 산업현장교수지원사업이 더욱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 한다. 많은 곳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배울 곳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 후배들이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바느질 한다고 말하면 아
직도 낮춰서 보는 게 일반적이에요. 학생들조차 졸업 후에 바느질 하는 걸 꺼려하고요. 패션에 대한 환상을 좇는 거예요. 사실 그런 건 없는데 말이죠.”

그의 꿈은 언젠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한 후 모교 강단에 서는 거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더 길게는 일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될 때까지 청바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세상의 현란한 잣대와 가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허정훈 대표. 그렇게 한 땀 한 땀 시간을 엮어 한 편의 완결된 삶을 향해 나아간다.
 

업데이트 2015-10-2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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