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12월을 맞이하며"-경상일보
  • 2634    

12월을 맞이하며

 

박순환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직무대행

 

서리가 내리고 산간에 얼음이 어는 계절이 왔음에도 텃밭 가꾸기는 계속되고 있다. 씨앗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을 거두는 지난한 작업을 일년 내도록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새 한해의 끝에 다다랐음을 실감하고 있다. 사계절을 온전히 쏟아야 하는 작물도 있는가 하면 반짝 한계절만에 알찬 결실을 거두기도 한다. 한계절이든 사계절이든 어느 하나 허투루 농사지어서는 안된다. 결실은 정직한 땀을 배신하지 않는 흙의 진실이 동력이기 때문이다. 텃밭이라도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단순한 진실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것을. 이것이 곧 하늘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다. 땀을 흘리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사상누각이다. 모래위에 성을 짓고 천년만년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 마지막 달도 며칠이 남지 않았다. 일년 열두달 가운데 정성을 쏟지 않는 달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적어도 12월은 1월의 초심을 되돌아보는 속에서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는 국가적으로 큰 변곡점이 있었다. 부당한 권력의 잘못을 응징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그것도 총칼을 수반한 폭력투쟁이 아니라 촛불로 상징되는 비폭력 평화투쟁에 의해 권력이 교체되는 것을 목도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거짓과 선동에 의한 허위와 조작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그것을 수긍하거나 인정하는 사람과 세력은 손 안에 모래처럼 한줌에 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영원히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잠시 잠깐 거짓이 득세하고, 진실이 가려질 수 있지만 그것은 긴 역사를 놓고 보면 찰나이자 순간일 수밖에 없다. 농부의 구슬땀과 부지런한 손발이 농작물을 키워내듯 정직과 성실이 우리 삶의 지표이자 이상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선 전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지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 쪽은 반드시 이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반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농사처럼 다음 해를 준비하고, 또 그 다음 해를 대비하는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역사에서 농번기와 농한기는 따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수확할 것이 없더라도 농부는 다음해 농사를 위해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 수확을 끝낸 밭을 갈고, 한해의 수확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땅심을 새롭게 보충하고 높이기 위해 성토작업을 하고 밑거름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위해 겨울은 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겨울은 한해 농사를 위한 또다른 시작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12월은 마무리인 동시에 출발점이다. 새출발을 위해서는 그간 걸어온 행적을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1월부터 11월까지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가를 되짚어본다면 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새출발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계란을 스스로 깨고 나오면 닭이 되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 깨어지면 달걀후라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과 같은 이치이다.

 

필자와 함께 기능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진로를 결정했지만 진로를 결정하고 난 뒤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으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서 자신감도 붙고 이것에 대한 자부심과 소중함도 느끼게 됐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효율이 아니라 가치였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6000여명의 포항 수험생들도 우리들의 아이들입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포항지진으로 수능시험 연기를 결정하며 밝힌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일성이 가치보다는 효율을, 방향보다는 속도를 강조했던 우리 사회의 잘못된 행태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17년 정유년 12월을 알차게 보내고, 2018년 무술년 개띠해를 모두가 힘차게 열어나가길 기대한다.

 

업데이트 2017-11-24 14:11


이 섹션의 다른 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