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과 유리천장(경상일보, 2016. 3. 16.)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차기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경선할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를 뽑는 프라이머리가 매우 흥미롭다. 올해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당 주류가 아닌 외부자가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억만장자 도날드 트럼프는 무수히 쏟아내는 막말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 기세가 초반에 비해 꺾였지만 민주당도 버니 샌더스가 상위 1%가 아닌 미국 국민 전부를 위한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여 젊은 층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의 하나는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튼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가 여전히 힐러리의 기대만큼 못하다는 것이다.
매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지옥에는 여성을 돕지 않은 여성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했다가 오히려 클린튼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본인도 ‘나의 가장 비외교적 순간’이었다고 사과해야 했다.
뉴햄프셔주에서 참패한 클린튼에게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해 준 네바다주 경선에서 힐러리를 구한 것은 여성이 아닌 흑인과 45세 이상 중고령자였다.
2008년 오바마 현 대통령과의 경선에서 젊은 미혼의 미국 여성들은 오바마를 더 지지했는데, 올해도 그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힐러리는 여성이 보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료를 잘 이해하고, 새로운 생각에 개방적이고, 양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풀어 간다고 여성을 치하하고 있지만 대졸자 중 50% 이상, 대학원 졸업자 중 60% 이상의 젊은 여성들은 힐러리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미국 젊은 여성층의 시원치 않은 갈망은 78세인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뚫어야 했던 유리천장을 현재의 미국 젊은 여성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고, 성별에 관계없이 역량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남성과 대등한 교육수준으로 무장된 젊은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경쟁할 수 있는 노동시장 여건이 되었느냐는 상당히 주관적인 문제이지만 여성이 꼭 대통령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많은 미국 젊은 여성들의 인식은 여성활용도 지수가 OECD국가중 맨 밑바닥 수준이 우리나라로서는 부러운 이야기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경우 204명의 1, 2급 간부 중 여성은 13명에 불과하다. 이사장이 되고 승진시 여성을 우대하고 있는데, 상위직일수록 승진후보자 명부에 여성은 매우 적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연공서열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특별승진은 아주 예외적이기 때문에 많은 공공기관에서 유리천장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지난 해 7월에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여성 직원을 간부직으로 승진시켰는데 내부 반발이 컸다. 육아휴직으로 대체하는 인력을 쓰게 되면 생산성이 떨어져 해당 부서에 업무 부담이 되고, 육아휴직자도 휴직기간동안역량개발이 안되는 측면이 있으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유리천장을 깨트려야하는 공공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육아휴직자를 승진시켰다.
그러나 공공기관장 임기가 3년이기 때문에 여성의 파격적(?) 간부 승진은 전시행정으로 오해받기 쉽고 실제적으로 과시용 행정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크다. 여성인력에 대한 우대가 전시행정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고 후임 기관장들의 여성인력의 활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스스로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