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와 능력중심사회 (경상일보, 2016.2.16.)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노동개혁을 둘러싼 최근의 노정 및 여야 간의 갈등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아직 성숙화되어 있지 못하고, 노조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6·29선언 이후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 우리나라에는 노사분규가 7000여건 발생하였는데, 대한민국 산업 심장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울산은 분규가 가장 심했던 지역의 하나였다.
정부는 노동문제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988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을 설립했다. 설립 초기 노동연구원의 연구진들은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선진국형 노사관계로 언제,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는데,(필자는 설립 초부터 참여하여 학교로 옮기기 전 까지 10년 가까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일했다) 짧으면 20년, 길면 30년이면 안정화되고 성숙될 것이며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고졸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주택가격 안정화 등 구조적 사회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노사분규의 이유 가운데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상당한 액수의 임금인상 요구였는데, 교육비와 집값 상승이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학력에 대한 차별이 없어 대학을 갈 필요가 없고, 집값이 안정화되어 교육비와 주거비 걱정이 없다면 기업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 인상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한 30여 년 전에는 사무직과 생산직의 복장을 달리하는 등 생산직 및 고졸에 대한 차별이 상당히 심했다.
30여 년이 지났으나 일부 대기업에서는 대졸 사무직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생산직으로의 전직을 희망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지만 고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은 여전하다. 고졸자 10명 중 7명이 대학에 곧바로 진학하고, 대학수학능력고사가 있는 날은 관공서 및 기업들의 출퇴근 시간도 늦추어지고 영어듣기 평가 시간에는 항공기 이착륙도 금지될 정도인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전세난으로 젊은이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가 임금인상보다는 고용안정으로 바뀌었지만 학력보다는 능력에 의해 평가받은 사회의 구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처우 격차, 과다한 비정규직 및 차별이 현안화 되어 있는 현재의 노사관계의 근원적 안정화를 위해 중요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어디서 출발하는지가 중요하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취업했으면 나중에 대학졸업장을 받아도 고졸로 자리 매김한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옮기거나 정규직이 되기가 매우 어렵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그 조직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일부 대기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처우에 관한 논란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에 기인한다. 같은 생산현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원청 소속인지 협력업체 소속인지에 따라 급여 차이가 상당히 나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협력업체 근로자가 사내 하도급 업체 근로자와 유사한 일을 하는데, 원청 생산현장이 아닌 곳에서 유사한 작업을 하면 원청소속 근로자와 급여 차이가 많이 나도 사내하도급과 같은 정도로 논란이 되지 않는다.(사내하도급 업체 급여는 1차 협력업체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시장에서 학력이나 연공이 아닌 역량과 성과에 의해 평가받는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처우 차이는 지금보다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능력중심 사회의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다.